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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채

금병소
 
선풍기 에어컨이
아무리 시원하다해도
할머니 부채만 못하다
 
뒷문 밖 댓잎 스치는
바람소리 잦아든 대청마루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우면
설렁설렁 부채질
여름 더위 범접 못 하고
 
극성부리는
파리, 모기 떼
할머니 부채 바람에는
맥도 못 춘다
 
모기 소리 잦을 때마다
아득히 멀어져 간
유년 시절의 추억들
 
그리워지는 한여름
할머니는 지금도 여름이면
하늘나라에서 우릴 위해
부채질 하고 계실까

● 금병소 시인- 경북 칠곡 석적 출생, '문학예술' 신인상 수상 등단, 1970년대부터 울산문협 임원으로 활동, 한국문학예술가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시인협회 회원, 현 울산문학예술가협회 울산지회 사무국장, 시집 '지금도 고향에는' '제비꽃' '풀잎 서정'.
 

▲ 최종두 시인

한국인은 자연에서 평화를 느끼는 본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한 본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진한 모성애와 할머니의 내리사랑이 녹아있는 민족의 생활상도 큰 영향을 갖게 하지 않을까하고 느끼고 있는지 오래다.
 언제나 순박한 소녀처럼 겸허하게 침묵하면서 서정시를 쓰고 있는 금병소 시인의 내면을 뒤집어보는 것 같은 위의 시는 그를 마주앉아 만나는 것 같이 평화로워 진다.
 어느 시인은 금시인의 시를 풀잎에서 느끼는 순수서정으로 비유한 바 있다. 동감이다.
 할머니의 부채가 에어컨이나 선풍기보다 낫다는 시인은 할머니가 감싸주며 쏟아 붓던 내리사랑, 그 순수하며 위대한 사랑을 체험하며 자란 이유로 한국인만이 지닌 심성을 타고 있는지 모른다. 부채도 부채려니와 배가 아플 때 "내손이 약손이다"하고 한번만 쓰다듬으면 거짓말같이 나아버리는 그 손이 곧 편작의 손임을 알고 있는 시인은 앞으로 순수 영혼으로 시를 쓰리라 믿고 싶다. 그것은 시인이 울산문단에서 보여준 풀 밑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티 없는 삶을 보아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최종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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