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이채
 

햇살고운 아침엔
오후의 쓸쓸한 바람을
알지 못했고
준비 없이 나선 길에서
비를 만날 줄 몰랐다면
이것이 곧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한줄기 실바람에도
홀로 앉은 마음이 불어대고
소리 없는 가랑비에
빗장 지른 가슴까지 젖었다면
이것이 곧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것이 스쳐가고
잊을 만치 지나온 여정에서
저 강물에 던져 버린 추억들이
아쉬움에 또다시 출렁일 때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흐르누 달빛 따라
돌아오는 길에
가슴 아팠던 눈물
길가 모퉁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부리를 적시고
불현듯 걸음을 세울 때
중년의 가슴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삶은 저만치 앞질러 가는데
중년은 아직도 아침에 서서
석양에 걸라 노을이
붉게 타는 이유
그 이유로 하여 가슴이
뜨겁습니다
 
▲ 이채: 동국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 한맥문학 등단(1998), 한국 문인협회 회원, 세계 문인협회 이사, 한국 청소년 문화예술협회 이사, 월간 웰컴 CEO 편집위원, 제6회 노천명문학상 대상수상(수필부문), 제3회 조지훈문학상 대상수상(시부문) 외 다수, 시집 '그리워서 못살겠어요. 나는' 외 다수.
 

▲ 서순옥 시인

□ 작가노트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그리움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작년보다 올해 더, 내년이면 올해보다 더,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리움은 더해지는 것. 그리움은 추억이고 과거형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쌓여있는 추억이 점점 늘어나고 보고픈 마음과 애타는 마음이 서로 실타래처럼 점점 뒤엉켜간다.
 유년, 초년,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 노년, 말년이란 인생이 있다면 깊어가는 그리움이 쏟아지는 연령은 중년이다.
 이채 시인의 윗글 중에 번뜩 눈에 띄는 인생과 사랑을 표현한 1연과 2연에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어렵지 않게 아주 평범하게 다가오는 구절이다. 며칠 전에도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우리가 흔히들 자주 쓰는 내용들이 아닌가. 그런 구절구절을 연결하여 철학이 깃든 시구로 만들었으니….

 


 이채 시인은 중년에 대한 글을 많이 쓴 시인이다.
 "중년의 당신, 어디쯤 서 있는 가"라는 이채의 또 다른 중년의 시를 읽고는 중년에 도달한 필자 또한 깊은 생각에 빠져 일주일 동안 패닉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진짜 어디쯤 내가 서 있는지,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어딘지를 생각하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낭송가들은 이채 시인의 중년에 대한 시를 많이 낭송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중년의 당신, 어디쯤 서 있는 가"를 일부만 소개하기에 앞서 이 가을 우울증 주의보도 함께 내립니다.
 /나를 알기도 전에 /세상을 먼저 알아야 했던 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때로 세상은 내게 엉터리였다/<중략>/이렇게라도 설 수 있는 것은 /엉터리 같은 세상에서도 /엉터리로 살고 싶지 않은 /아직은 남아 있는 한조각 순수일 것이며 /아름답기만을 소망한 여정이 /진실이 비추는 길을 따라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순옥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