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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예술인들의 대표 단체인 울산예총이 예술제란 이름으로 푸짐한 잔치를 벌인다. 내 인생에서 보람스러운 일을 들라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울산예총을 창립하는데 힘을 다 한 것이어서 처음은 보잘 것 없었으나 날로 창대해진 이 단체의 연중 큰 행사인 예술제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참석하고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일은 나의 후배들이 끌고 가는 울산예총은 지혜롭다는 것이었고 해마다 그런 마음을 가졌었는데 정은영 처장이 기획한 올해 서막식은 유달리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슴부풀도록 감격스런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된 김규현 선배와 서진길 예총 고문 등이 모여 앉았을 때 서진길 고문이 "우리도 굿판 한번 벌여봅시다"하고 제안한 것을 의논 끝에 시작하게 된 울산예술제가 어느덧 서른 일곱해동안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되어 왔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랴.

 흘러간 37년 세월을 되돌아보며 예술회관 대공연장에 앉아있었는데 웅장한 팡파르가 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악국악무용지부가 어우러진 한마당무대는 개막부터 황홀하게 취하도록 만들었다.

 그럴수록 나의 생각은 자꾸만 기억을 파고들게 만들었다. 이 화려한 무대에서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한번 못해보고 떠나가 버린 선배들. 평상을 들어다 무대를 만들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채 마냥 즐겁던, 관객을 울리고 웃기며 애환을 나누던 그 선배들이 새삼 측은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의 활동시절은 어땠는가? 공연시설로는 거리가 먼 종하체육관에서 고복수 가요제를 개최하고 울산최초의 뮤지컬 '살기 좋은 내고장'을 공연 할 때와는 천지 차이인 저 웅장한 무대….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한 그런 감회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감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사회자의 재치가 주저하는 김기현 울산시장을 기어이 무대에 세우고 노래 한곡을 부르게 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사회자의 재치도 묻혀버리게 하 듯 김 시장이 뽑아내는 가요 안동역! 안동역을 울산역으로 개사한 것 외에는 박자와 음정을 정확하게 부르는 노래가 울려나오자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 방송사 밥을 20여년 넘게 먹은 내가 노래솜씨를 구별 못할 리 없다. 웬만한 노래자랑대회에서도 단연 최고상을 받고도 남을 김 시장에게 사회자는 가수증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열광적인 시민들이 김기현!을 연호하고 있을 때 돌연 눈을 감고 있었다. 아! 지금 이 순간들이 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고향에서 얼마나 기다리며 몸을 던졌던가? 때로는 보람되고 환희에 넘치고 때로는 울고 싶도록 서글프던 시간들을 얼마나 넘겼던가? 척박했던 문화풍토에 놓였던 울산의 예술이 영화필름처럼 회상되고 알아주든 몰라주든 한달음으로 달려온 예도의 길이 외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을 고해라고 주장했던 쇼펜하우어는 예술이 인생의 고뇌를 완화시킨다고 했다. 괴테는 인생이 세상에서 해방되는 길은 예술을 통하는 길만큼 확실한 길이 없다고 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 우리를 울린다 해도 그 삶이 예술에 근접해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시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르네상스처럼 불붙은 예술의 열기가 정말 르네상스를 방불케 하고 있지 않은가.

 14세기 무렵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불붙은 르네상스(문예운동)는 인간성 발견의 운동이었다. 중세 봉건제도의 비인간적인 굴레에서 인간을 구하고 인간성을 그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바꿔놓게 한 것이 르네상스의 본질이었다. 억누르려는 억압으로 지배하려는 권위를 타파하는 것이 르네상스의 중요한 정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의 르네상스는 박맹우 전 시장이 불을 지폈다면 김기현 시장은 신르네상스의 열기를 드높이고 있다 할 것이다. 울산예술제의 서막식에서 불러준 안동역 노래 한곡이 웅변이 아닌 대중가요였다 하더라도 권위를 내려놓고 시민들과 예술인들 그 밖에 모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소통을 이루는 통로를 예술제를 통하여 시장이 보여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만큼 2017년 10월 18일 그날은 불신과 대립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감격을 쏟아주며 예술의 세계에 안길 수 있게 한 날이었기에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가을비가 대중가요 안동역의 가사처럼 내리고 있었다.
 어느 낯모를 여인이 우산을 받쳐주며 나직이 말했다. "김기현 시장님, 참 멋있지예?"
 나는 안동역이 울산역으로 바뀌어 빛을 발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여인에게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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