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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홍시처럼 빨갛게, 모과처럼 노랗게 잘 익은 시월의 끝날이다. 이렇게 한 계절이 익을 대로 익으면 반가운 손님처럼 초대하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봄, 여름, 겨울에는 잊고 있다가 가을에만 꺼내보는 책인데, 미국 버나드 와버가 글을 쓰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일러스트인 이수지가 그리고 옮긴 '아빠, 나한테 물어봐'이다.


 두꺼운 표지를 펼치면 외출 준비를 하는 아빠와 여자아이가 나온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아빠는 운동화 끈을 매는 중인데, 이미 아이는 계단을 내려가다 탱탱볼처럼 튀어 오른다. 아빠와 아이는 단풍이 곱게 든 공원으로 나가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말해도 되는데 굳이 아빠한테 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라고 한다.
 좋아하는 동물을 나열하고 헤엄치는 개구리도 좋고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도 좋은 초긍정형 아이의 목소리는 아빠라는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생기발랄 반짝 벌레처럼 빛나고 벌처럼 붕붕거린다.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꽃과 아이스크림은 정말 정말 사랑한다고 강조해 아빠가 기억해주길 바란다. 아빠의 짧은 질문에 아이의 서너 마디가 보태지는 대화는 아이의 자유분방한 창조성과 생명력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깨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런 아이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 새 아이가 앞장서고 아빠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고 그 뒤를 따라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조희양 아동문학가
 시절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와 그리 다정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내 성품이 아버지를 닮았지만 당신은 높고 어려워서 치대고 어리광을 부린 기억이 없다. 그로 인한 부성결핍 때문인지 유난히 젊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 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특히 도서관에 함께 오는 아빠와 아이는 부러워서 한참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또 자식에 대한 애틋함을 SNS에 올린 아빠의 글이나 사진은 꼼꼼하게 읽는다. 이렇게 아버지와의 허기진 시간이 가실 길이 없는 나는 이 책을 풍경처럼 차려 놓고 젊은 날의 아버지를 모셔 온다. 그리고는 당신의 따뜻하고 두툼한 손을 빼어 코흘리개 어린 나의 손을 맞잡아 준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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