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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의성어                                                                              

구석본
 
가을날 산을 오르면 나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쓸쓸, 나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쓸쓸, 쓸쓸,
아니. 나무와 바람이 주고받는 말  
아니다 낙엽이 스치는 소리다.
좀 더 귀를 기울여 봐
나무와 잎과 바람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울리는 소리다        
쓸쓸, 쓸쓸, 쓸쓸
 
우리가 처음 손잡았던 그 가을날 저녁                  
어둠 속에서 떨리던 너의 목소리,
'사랑한다는 것은 쓸쓸함을 나누는 것이야, 쓸쓸함의 체취를 주고받는 것이야'                 
그때는 혼돈의 말이었지.                          
 
이제야 들려온다, 너의 쓸쓸함이 내개로 건너온다. 가을엔 나무와 잎, 나무와 나무, 잎과 잎, 숲과 하늘의 경계가 바스러져 서로를 넘나든다. 서로를 지우고 있다. 바야흐로 명료한 하나의 세상이다. 존재의 몸들이 지워진 다음, 몸 없는 존재가 투명하게 일어서고 있다. 소리로 울려오던 쓸쓸함이 나무처럼 일어서고 잎처럼 팔랑이고 드디어 눈물처럼 영혼의 계곡을 흐른다.
 
쓸쓸, 쓸쓸, 쓸쓸, 쓸쓸     
너와 나와 바람에게서 울려오는 가을의 의성어다.
 

● 구석본 시인- 경북 칠곡출생. 1975년 '시문학' 등단. 시집 '지상의 그리운 섬', '추억론' 외

 

 

 

 

 

추수가 끝난 벌판이 쓸쓸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금색 들녘이던 벌판이 삽시간에 비워지고 나니 숨어 있던 논두렁길이 쓸쓸하고 형형색색 매달고 있던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니 가을 또한 쓸쓸하다. 그러고 보니 11월도 끝나가지 않는가. 해마다 이 때쯤이면 한 해를 되돌아보지만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너무 천천히 가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며칠 전부터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걷이도 아직 남았는데 겨울이 왔다니 남은 손길만 분주하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도 잊어버리고 엉뚱한 일을 하는가 하면 미뤄 놨다가 나중에 하리라 생각하다가도 마저 끝내야겠다고 서두르기도 했다. 사람마음이 이리도 갈팡질팡하는데 저 계절은 어떠하랴.
 안타까운 소식이 또 들려왔다. 작년 가을에 겪은 지진 여파가 이번에는 불과 40㎞ 밖에서 또 일어났다.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한참이나 흔들리다가 아~ 지진이구나! 할 정도로 미련스러워졌는데 막상 일을 당한 가슴은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작년 지진에도 진원지와는 가까이 있어도 무탈하게 넘어가서 다행이고 이번 지진에도 무탈해서 다행이지만 좋은 소식이 들려 왔으면 얼마나 좋으랴. 지진의 아픔이 온종일 울려 퍼지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지금 참 쓸쓸하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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