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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향기

이해인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포기의 난초를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히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뀱 이해인 시인- 1970 '소년'에 '하늘', '아침'으로 등단. 2000 가톨릭대학교 지산교정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 작가노트

오늘 밤에 몰래몰래 산타할아버지 다녀가실 것 같은 거리에는 아름다운 트리와 네온 불빛이 화려하다.
수비군 같이 서있는 나무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는데,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까지 층층이 껴입은 몸을 점점 움츠러들고,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은 한 장 남은 달력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풀풀 날아갈 것 같은 날갯짓만 반복한다.
한해의 모든 일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지나온 열한달 반을 뒤돌아보니 분명 좋은 기억들이 더 많았는데,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기억이 더 크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분은 연말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다가올 내년 해를 생각하면 또다시 양어깨가 버거워질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어떤 향기로, 어떤 색깔로, 내 이웃에게 어떤 꽃과 노래가 되었는지, 무심코 내가 던진 돌에 누가 맞아 아파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무관심에 위로받지 못한 영혼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그것 또한 과오(過誤)요. 과연후능개(過然後能改)라고 했던가.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면서 반성하고 참회의 시간을 가져보는 이해인 수녀의 겸손의 향기가 묻어나는 기도에 손을 모아본다.
올해는 울산신문과 인연으로 좋은 시 알리는 역할을 한 것에 작은 행복을 느껴봅니다. 혹여, 시인들의 향기를 제대로 실어 날렸는지, 독자들에게 어떤 여운을 남기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018년 무술년에는 애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서순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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