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과의사의 경우는 한 환자를 몇 년씩 계속하여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오래 지내면서 친밀해진 경우에는 미안해하면서 들어오시는 분도 있으신데 나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 하시는 것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것이다. 무엇이 미안하냐고 물으면 빨리 좋아지지도 못하고 아프다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이다.

환자분들의 여러 고통 중에는 이젠 증상이 사라져서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는 고통도 있다. 환자분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증상이 언제나 좋아지는가 하는 것인데 여러 요인이 있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는 답을 주게 된다.
병의 성질도 있겠지만 그 병을 어떻게 받아들여 그것에 대하여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도 있고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도 변수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렇듯 앞날의 예측은 어려운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이제껏 지내온 과거에서 지금도 반복되는 어떤 점들에 대한 이해이다.

어느 환자는 이젠 술 생각이 하나도 없다 나가면 술을 안 마실 것이라고 퇴원을 하시고는 얼마 안 있어 다시 술 취한 모습으로 오시면서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화를 내면서 상담에 임하시기도 한다. 화를 내는 것이지만 미안한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일 것이다. 이젠 새 사람으로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것인데 그것이 안 된다.

새로운 나의 삶이라는 것이 이제껏 지내오던 삶과는 다른 것이어야 하고 그것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변환이 어디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며 이제껏 과거란 무엇이고 새로운 미래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사람이 그 사이 순간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런 것을 새해를 맞이하면서 결심하기는 한다.

우리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하여 내 자신으로 다가가게 될 때에는 하지만 이제껏 존재해오던 바 자신의 '과거 기재'로 되돌아온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바로 전에 무엇을 썼던가를 모르고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할 수 없다. 이때의 과거란 죽은 과거가 아니며 살아있는 과거로 현재에 의미를 가지며 미래로부터 나타나는 과거이다.

환자들이 미안해 할 때마다 그리고 이 고통에서 언제나 빠져 나오는 것인가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과거라는 것이 정말 어떤 계기가 있어야 그곳에서 넘어서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의 '개혁'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여야겠지만 그러나 그 과거를 넘어서지 않고는 결코 새로운 미래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미래란 새롭게 자신에게로 다가가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존재해오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기 때문 그렇다. 여러 번 인용했지만 과거란 새 것으로 갈아입기 위하여  벗어던질 수 있는 옷 같은 것이 아니다.

과거를 넘어선다는 것은 과거를 솔직히 되찾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역사적 인식과도 같은 것이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열려있는 마음에서 다시 체험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 같은 것으로서, 그런 열려있는 실존에서 현재의 행동은 과거 및 미래와 더불어 결정된다는 것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리바운드 하여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되며, 이것이 현재를 만드는 '현재화' 이며, 비전의 순간이 이것이다.

이때의 시간이란 그냥 재깍재깍하고 가는 물리적 현재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새해를 맞고 그리고 과거를 생각하면서 송년회를 갖고 하는 시간은 그런 현재가 계속되는 시간이 아니고, 내 미래로 다가가고 과거로 돌아오고 현재에서 그대 곁에 머물게 되는 미래, 과거, 현재로 빠져나와 있다. 기대함, 간직함, 되돌아옴이 지금 ,당시, 다음이라고 밖으로 말하면서 빠져나와 있는 것으로, 그런 시간이 세계에 속하고, 그런 세계를 앞서 던짐이라서 자기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기에 '탈아(脫我)적' 지평이다. 우리는 그 세계개현의 영역에서 자기 밖으로 관계의 전 영역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의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는 존재이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쨌든 타자를 직접 이해할 수 있고 그가 화를 낼 때조차 사실은 미안함의 다른 표현 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접 안다. 그렇게 그 존재와의 관계란 존재이해로서 내 존재가 드러나는 정도와 일치하여 타 존재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직접적인 관계이므로 그 관계에서 주관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감'으로서 그의 과거를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과거의 현재로의 리바운드로 각자는 새로운 미래로 다가갈 수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