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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권천학

취한 속 씻어내려고
홍합을 삶는다
덜거덕거리는 껍질 골라 까먹는 동안
시원한 국물 맛에 쓰린 속 조금씩 풀리고
구겨졌던 시간들도 허리를 펴는데
끝내 입을 열지 않는 홍합이 있어
칼을 들이댄다

끓여도 끓여도 열리지 않는 문
죽어서도 몸을 열지 못하는
그 안에 무슨 비밀 잠겼을까?
남의 속은 풀어주면서
제 속 풀지 못하는 홍합의 눈물
그토록 깊어 단단했구나

들이댄 칼로 내 속을 찔리고 마는
죽어서도 못 열 비밀 하나쯤
간직하고 사는 붉은 니 마음
내 알리
알리

● 권천학 시인- 1946년 일본 출생 (본적 안동, 성장 김제).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8년 캐나다 이주. 저서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 '청동거울 속의 하늘'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가이아부인은 와병 중' '고독바이러스' '길에서 도를 닦다' 등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겨울을 맞이하고 부터 '쓸쓸하다'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군불을 지피며 감자를 구워 먹었던 시절을 회상하기엔 현실의 환경은 너무나 변해버렸다. 야인으로 물러난 지금에 와서는 돌이켜 보면 퇴근하다가 시장 끼가 감돌면 종종 포장마차에 들르거나 허름한 술집에서 안주가 나오기 전에 목이라도 데우라고 퍼주던 홍합 국물이 생각나 모처럼 읍내에 나간 김에 홍합 오천 원어치를 사들고 왔다.


사실 어릴 적엔 홍합보다는 열합으로 들어왔었는데 어느 날부터 홍합이란 소리를 더 자주 듣게 되었다. 홍합과 열합의 차이는 무엇일까? 열합이란 것은 홍합의 방언이라 하니 아무렇게나 불러도 상관은 없지만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은 여자 신체의 일부분을 비유해대는 바람에 멀찌감치 거리를 두기도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홍합을 씻었지만 양이 그다지 많지 않아 냄비에다 담아 끓였다. 끓이는 도중에 성급한 마음에 손이 먼저 갔지만 주전부리로 먹는 홍합의 맛을 어찌 표현해야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퇴근이란 행위가 없어진 지금 홍합 한 냄비를 순식간에 까먹고는 홍합껍질로 국물을 홀짝홀짝 떠 마시며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까지 잊고 살았다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한 때는 밥을 먹을 때마다 오관게(五觀偈: 이 음식이 올 때까지 공덕을 생각할 진데, 덕행이 부족한 나로써 먹기가 송구하다. 음식에 염탐하면 삼독도 구축되나니 생사를 멸하는 양약으로 생각하면서 도업을 이루기 위하여 이 밥을 먹노라)를 염송하며 먹기도 했었다.


비록 지금은 생활에 찌든 탓인지 오관게를 염송하지 않는다 해도 빈 벌판을 바라보며 황량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간에 저 홍합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힘겨운 삶을 보태주신 분들 덕분에 공양하는 마음을 앞세우며 홍합을 맛있게 먹긴 먹었는데 홍합이 감추고 있는 비밀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허탕 친 꼴이 되었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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