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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해 동안 이루고자 한 약속이나, 계획을 지켰는지 되돌아보면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온다.
무엇이든 계획을 이뤄야 하고, 꿈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무조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나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한 해를 허탕치며 보냈다는 자책감에 괴롭다면, 그림책 <버스를 타고>를 살며시 펼쳐보면 어떨까.


이 책은 이국적인 풍광이 가득하다. 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한 줄기 길이 나있고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린다. 모자를 쓴 한 청년이 제 몸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청년은 평온한 표정으로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아랍의 아주 작은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이곳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버스가 한 대 올까말까 하다. 청년은 작은 라디오를 꺼내서 노래를 들으며 지루함을 달랜다. 노랫말도 흥겹다. 룸룸파룸 룸파룸.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겁고 흥겨웠다. 원숭이가 매달려 대롱거리는 트럭도 보고, 멕시코 카우보이 아저씨가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작은 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북을 치고 노래하며 북적거린다.


하지만 버스는 끝내 오지 않고 깜깜한 밤이 되자 청년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이불삼아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한 사람도 탈수가 없단다. 야속한 버스는 청년을 두고 재빨리 떠나가 버린다. 버스를 바라보는 청년의 뒷모습이 허무하고 안타까웠다.
한 해 동안 열심히 해보겠다고 뛰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고 버스를 타지 못한 채 남겨진 기분. 승진에서 멀어진 직장인, 시험에서 떨어진 수험생, 회사에 합격하지 못한 취업생의 절망적인 마음이 이러할까.
하지만 그림책 속 청년은 화를 내지도 울지도 주저앉지도 않는다. 그저 평온한 얼굴로 커다란 짐을 짊어진다. 그는 라디오 노래를 들으며 타박타박 걷기 시작한다. 룸룸파룸 룸파룸.
 

권은정 아동문학가
권은정 아동문학가

책은 끝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여전히 시작되고 있다. 버스를 타지 못한들 어떠리. 인생은 여전히 반짝이고 즐겁고 행복한데. 빨리 가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며 소중한 이들을 만나고 고운 마음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것을.
떠나간 버스야, 잘가라. 새로운 한 해, 새 길을 찾아 두 다리로 춤추며 노래 부르며 천천히 가련다. 룸룸파룸 룸파룸.
 권은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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