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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발걸음 재촉하는데 마주 오던 청년의 눈빛이 내 앞에서 잠시 흔들리더니 휙 스쳐지나간다. 누구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 눈빛이 영 떨쳐지지 않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눈빛에 매달리다 한 순간 무릎을 칠 뻔했다. '그래, 천용이야.' 확신할 순 없지만 왠지 천용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난 것은 학교를 그만 두고 빵집을 연 한참 후였다. 어느 날 얌전한 우리 메이트가 빵집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몰아내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않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애 어른 할 것 없이 하루 서너 명씩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늘 앞장서서 거두던 메이트가 그날따라 아이들을 막으려고 손을 내저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메이트의 언짢아하는 눈빛에도 불구하고 나는 멀어져가는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나 녀석들은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모두 달아나버렸다.


예닐곱에서 열 한 두 살 정도의 아이들은 지저분한 얼굴, 시커먼 손으로 둘씩 셋씩 경계의 눈빛과 불손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하고 어울려 다녔다. 메이트 말로는 어느 날 녀석들이 불쑥 들어와 더러운 손으로 빵을 집는 바람에 옆에 있는 빵조차 팔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밖에다 세워두고 빵을 주어 보냈다는 것이다.


하루는 아이들을 불러 테이블에 앉혔다. 녀석들도 얼떨떨해하고, 가게 식구들도 의아해했다. 깨끗한 그릇에 우유와 빵을 접시에 담고 포크까지 놓아주니 녀석들은 더욱 어리둥절해했다. 시간이 지나자 굳어 있던 녀석들의 경계하던 눈빛과 얼굴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작고 소박한 대접 앞에 그리도 불손하게 굴던 녀석들은 서서히 껍질을 벗고 순한 아이로 돌아온 것이다. 이름과 나이를 묻는 내게 보이던 거부감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는 재잘거렸다. 혼자서는 거리에 살기 어려워 둘씩 셋씩 무리지어 다닌다고, 그것이 그들 유일한 거리 생존법이란 것. 이후 아이들은 하루 한 번꼴로 빵집에 들렀다. 누구 왔더냐 묻기도 하고, 서로 돈 훔쳐갔다고 고자질도 하고, 물을 마시고 가면서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이 아이들에겐 있는 것이 없었다.  꿈도 희망도 없었고, 내일도 없었다. 오로지 지금 현재만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엔 배고프면 먹으라고 빵을 주어 보냈지만 나중에 보니 빵 상자에 버리고 갔다. 거추장스레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된다 떠들었다. 그 자신감은 거리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아이들을 거둔 덕이기도 했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목적으로 거리의 간판을 읽어오라 시켰더니 2 3일 하는가 싶더니, 며칠 동안 발걸음을 끊어버렸다. 그나마 제일 착실한 아이가 천용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녀석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학교에 잘 다니기로 약속하였다. 한참 거리에 보이지 않기에 잘 다니느냐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사흘 학교에 왔었다고 포기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리고 학교 적응이 쉽지 않았을 거라 하였다. 친구도 없고, 있다 해도 기피대상 1호인 아이니 누가 그 아이랑 어울리게 하겠느냐고. 하긴 글자를 모르니 학습 진도 따라가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수업시간은 더욱 지옥 같았을 것이다.


천용이는 얼마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아이들은 이미 제도권 안에서는 견디기 힘든 습성이 몸에 배어있었다. 붙들려서 보육원에도 있어봤지만 재미없어 담을 넘었다는 것이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나다니느냐 물었더니 딴 곳을 보는 녀석도, 눈물을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애들 상처를 건드려버린 것이다. 미안해하는 나를 보더니 가끔 집에 가지만 반겨주지도 않고, 마주치면 얻어맞기만 한다고 하였다. 영우를 뺀 나머지는 재혼한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고 선택한 것이 가출. 나올 때 훔친 돈과 귀중품 때문에 환영 받을 처지도 못 되었던 것이다. 옳고 그름도 희미해져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아무데나 세우는 것이 절도라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중국집 배달하다 수금한 돈을 가지고 달아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하던 아이들. 철없는 그 녀석들에게 잠깐의 눈빛과 짧은 토닥거림과 한 숟갈 정도의 사랑과 한 국자 정도의 관심만 나눠주었더라면 이 아이들은 결코 차가운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지는 않았으리라.


점포를 접으면서 제일 마음에 걸린 것이 이 아이들이었고, 문득문득 궁금하였는데 뜻밖에도 천용이의 눈빛을 만난 것이다. 순간이라 옷차림도 기억에 없다. 다만 헌헌장부의 눈빛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부디 부모형제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접고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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