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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의 일이다. 당시 울산환경운동연합을 필두로 동물보호단체, 녹색당울산시당까지 전국의 동물보호 인사들이 울산에 모였다. 이들이 울산에 모인 것은 돌고래 수입을 공식화 한 남구청을 규탄하기 위해였다. 당시 이들의 규탄 성명의 요지는 이랬다.

<울산 남구청은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내부적으로만 진행하던 동물쇼용 돌고래 수입에 대해 공식적으로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반입 돌고래의 폐사에 대해서는 '사육환경 개선'이란 명목으로 덮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남구청장과 고래 쇼 관광프로그램 및 고래생태체험관은 그동안 총 8마리 중에서 5마리가 폐사되도록 하는데 주연과 조연, 무대역할을 했다. 남구청의 비윤리적인 돌고래수입 정책은 수입이 죽음으로 종결되는 수족관 고래쇼 정책을 지속시켜, 폐사하는 돌고래의 수를 점점 늘리고 있다.>

중간을 생략하고 요지만 간추린 것이지만 성명은 몹시 흥분된 단어들과 들뜬 문장이 손가락질과 함성을 담고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울산 남구는 며칠 전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새끼 돌고래 고장수를 공개했다. 고장수는 지난해 6월 13일 고래생태체험관의 전시용 돌고래 장꽃분에게서 태어났다. 국내 수족관에서 태어난 새끼 돌고래의 생존율이 높지 않은 탓에 당시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고장수의 이름은 100일 잔치에서 아비 돌고래인 '고아롱'의 성을 따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고 한다. 이번에 공개된 고장수는 생후 7개월째를 맞았다. 태어날 때 1m가 조금 넘던 고장수는 말 그대로 '무럭무럭' 자라 성인 남성 평균키를 훌쩍 넘은 180㎝까지 몸집이 커졌다. 20㎏였던 몸무게는 75㎏로 늘었다.

새끼고래 한 마리가 7개월을 살아남은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싶겠지만 수족관 상태에서 태어난 새끼 돌고래의 생존율이 극히 낮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수족관 새끼돌고래는 거의 대부분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폐사한다. 지난해 꽃분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도 높은 폐사 가능성 때문에 축하조차 받지 못했다. 어쩌면 겨울부터 봄을 지나 여름을 앞둔 시점까지 돌고래 수입과 폐사, 은폐 문제로 시끌했던 남구에 기름을 붓는 사건일 수도 있었다. 곧바로 폐사했을 경우엔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울산 남구에 고래생태체험관이 문을 연 지난 2009년 이후 수족관에서 총 5마리의 돌고래 폐사가 이어졌다. 폐사가 이어지면서 동물학대 비판도 덩달아 거셌다. 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2012년 암컷 돌고래 2마리가 폐사하고 2014년에 태어난 새끼 돌고래는 수족관에 적응하지 못하고 3일 만에 폐사했다. 2015년 6월에도 생후 6일된 새끼 돌고래가 폐사하고 같은 해 8월에는 영역다툼을 하던 수컷 돌고래가 다쳐 패혈증으로 폐사하는 등 모두 5마리가 죽었다.

울산과 고래는 오래된 공동체다. 태화강이 생태복원의 교과서가 되고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달라지면서 울산은 동해로 나가는 한반도의 기상이 옹골차게 서린 오래된 역사성의 도시라는 명성을 되찾아 가는 상황이다. 그 오래된 역사를 복원하는 노력은 바로 울산시민들의 몫이었고 그 노력의 결과가 울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대적, 아니 역사적 소명이 됐다.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울산의 역사와 문화 유전인자는 바다다. 산과 강, 온 산하에 서린 역사와 문화의 흔적은 울산의 보물창고와 같은 것이지만 그 기운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질퍽하게 펼쳐진 동해는 이 땅에 퍼질러 앉아 대대손손 삶을 가꾼 선조들의 꿈이었다. 산자락 휘감아 등짐에 지고 태화강 백리 길을 굽이돌아 달려간 바람이 망망한 동해 앞에 숨이 멎는 순간을 대면하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를 모른다. 바로 그 바다의 심장이 고래다.

반구대암각화에 가죽배가 새겨져 있고 그 배를 타고 7,000년 전 사람들이 고래사냥으로 삶을 이어온 증좌가 있지만 정작 울산에는 이제 고래가 없다.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면 가끔 만날 수 있는 고래와 고래생태체험관에서 동물 학대의 상징이 된 채 불편하게 만나는 고래가 있을 뿐이다. 필자는 새끼돌고래 고장수가 태어난 이후 몇차례 그의 눈망울을 마주했다. 7개월을 버틴 고장수의 눈망울에서 동물 학대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고래도시 울산에 생태체험관을 만들고 고래마을과 고래박물관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일부의 주장처럼 상업적 이윤을 쫓는 행태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학대의 상징이라면 당장 부숴버리는 게 맞다. 문제는 불편한 문제를 애써 끌어안고 짊어지고 가는 이유다. 바로 울산이 인류 최초의 고래사냥터였고, 그 문화가 제의와 발원, 회화와 문자의 기원으로 우뚝 서 세계인의 자랑이 되기 때문이다. 그 심장에 고래 있는 고래도시를 만들기 위해 온갖 욕을 듣고도 조련사들은 7개월 동안 밤낮으로 고장수의 심장을 지켜냈다. 고장수가 성체로 자라 지금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돌고래도 엄연히 한 생명이라며 고래고래 고함 질러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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