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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신치료'는 소크라테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융은 분석이란 소크라테스 산파술의 정제된 기법이라는 말을 했는데, 산파술이 대화 상대자의 생각이 잘못된 헛생각인지 생명의 진실인 본능인지를 입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분석은 무의식에 있는 의미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꿈 분석은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법인데 융 분석가인 폰 프란츠는 소크라테스의 두 개 꿈을 분석하고 있다.   

이 꿈 분석 책에서 어렴풋이 소크라테스를 짐작하고 있었는데,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그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그런 꿈을 꾸고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인가, 그 시대로 돌아가서 그를 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실적 삶에서 그 자신 체험을 있는 그대로 문답을 통하여 말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것은 문자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것이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말하면서 대화를 통하여 대화자의 마음에서의 진실을 나타나게 하는 즉 출산하는 것으로서 대화술(dialectic)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꿈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전해지는데 두 개의 꿈을 담고 있다. 첫 번째 꿈은 그의 삶의 이전 시기에 반복하여 나타나던 꿈과 같은 것으로 그에게 말하곤 하던 내용의 꿈이다. '소크라테스야 음악과 일을 해라' 하는 꿈이다. '음악을 너 자신에게 적용해 봐라… 마치 경주에서  응원하듯이 꿈은 내가 추구하는 것을 계속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음악은 가장 높은 철학인 것이고, 나는 그것에 헌신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꿈에 대하여 폰 프란츠는 소크라테스가 너무 합리적이었기에 그것을 균형 잡기 위하여 그의 주의를 감성을 개발하는 것으로 돌리려한 꿈의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꿈은 사형에 처해졌을 때 그의 친구인 크리톤에게 들려주는 꿈인데 '빛나는 복장의 옷을 입은 여성이 소크라테스에게 접근하면서 셋째 날이 진흙 같이 너에게 온다'는 애매한 말을 던지는 꿈이다. 이 꿈을 해석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면서 폰 프란츠에게 분명하게 여겨지는 것은 빛나는 그녀는 소크라테스의 아니마라는 것이다. 남자의 죽음 앞에는 그의 아니마 영혼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소크라테스의 부인은 악처로 유명한 크산티페이고 에로스를 접촉하는 꿈을 꾸는 것은 있을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그는 그의 인생 말기까지 아테네 젊은 남자의 애인으로서 있었기 때문 그에게 아니마는 발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얀 모습의 여인은 아마도 심포지엄에서 말하듯 플라토닉 에로스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 생활에서는 이런 고귀한 아니마의 희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상적 아니마를 찢고 그의 어두운 부분으로 다다를 수 있어야 하며 그래서 동물적 본능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분리되어 현실적 여성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이런 남자는 에로스를 이성(理性)으로 대체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어렵게 하고 그의 아들이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병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융 학파내의 분석가인데도 에딩거는 이 해석을 비판한다. 폰프란츠의 논문은 그녀가 젊었을 때 쓴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니마 발달 결여와 어머니에의 동일시를 지적하는 것인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인의 한 특징일 수는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동시대인들에게서 앞서 있었던 것이며, 현대의 기준을 그에게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소크라테스의 심리적 깊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로 돌아가서 봐야할 것 같고 플라톤의 '국가'는 그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생각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조국 아테나가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한 10년 후쯤에 태어났다. 민주주의와 자유의식이 확장하는 시대였지만 조국은 다시 스파르타와 패권을 놓고 벌이는 긴 전쟁으로 빠져든다. 민주체제가 도전을 받고 있었고 소피스트들이 낳은 혼돈도 가중되던 때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올바름(justice)이 무엇이고 또한 덕(virtue)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했다. 산파술을 말하면서 자신안의 다이몬에 대하여도 말했다. 그는 친구 크리톤의 권유대로 감옥에서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다이몬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 그를 사약을 받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절대적으로 확실한가에 대하여 그 자신 아무 입증을 한 것은 아니지만, 후세는 그것을 심정적 확실성이라고 말하며 내면의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그냥 자신의 마음의 어떤 상태였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테네와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가 다이몬에 의해 선택한 것은 아테네가 선고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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