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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딸이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려준다. 받아든 손이 떨린다. 딸도 쑥스러운지 대충 만들었다며 기대는 하지 말란다. 아이가 처음으로 싸준 도시락이다. 가끔은 엄마가 싸준 도시락만 받아먹었는데 이만큼 자라서 자주 예쁜 짓도 한다 싶었다. 시간의 감사함일까. 이 귀한 것을 아까워서 어떻게 먹을까 했더니 종종 싸줄 터이니 맛있게 먹으라며 돌아선다. 나는 쇼핑백을 들고 쉽게 집을 나서지 못했다.

 

딸이 싸준 첫 도시락에 오버랩되는
그겨울 어머니의 따뜻했던 도시락
어느 봄날
나도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싸
생으로 걸어왔던길 같이 가고 싶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책상 위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가 종종 싸준다고는 했지만 짐작하건데 앞으로도 도시락을 들고 출근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귀하다. 펼친 도시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내 딸이지만 가끔은 살갑지 않다고 여겼는데 언제부턴가 많이 달라졌다. 그런 딸이 스스로 만들어 주는 것이니 그 감동이 더하다. 이런 것이 엄마의 마음일까, 가슴 뭉클함은 딸이 도시락을 싸 준 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어머니가 싸 준 평범한 날의 특별한 도시락 때문이기도 하다.

초등과정을 빼고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이모네에서 다녔고, 그 다음부터는 남해와 부산을 오가며 혼자 자취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숙식은 언제나 나 혼자의 몫이었다. 더러는 도시 생활이 서툴러 추운 방에서 굶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자주 떠오른 것은 어머니의 도시락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마을과 그렇게 멀지 않았다. 등 너머 이웃 마을에 사는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느 겨울이었다. 그날도 어머니는 전날 준비한 푸성귀를 팔려고 새벽에 시장으로 가고 없었다. 어느 때보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아침을 챙겨먹으려다가 귀찮은 생각에 그냥 학교로 갔다. 아침을 굶은 상태로 오전 수업이 끝나갈 즈음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 모두는 일제히 약속이나 하듯 소리 난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누가 들어설 것인지 궁금해 했다.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내미는 사람은 머리에 수건을 쓴 어머니였다.
우리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어머니의 손에는 나일론 보자기로 싼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시장에서 돌아와 딸이 아침을 굶고 간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선생님께 도시락을 전해주며 돌아서 운동장을 빠르게 가로 질러갔다. 선생님이 도시락을 내게 들려주고 맛있게 먹으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밥이 따뜻할 때 내개 전해주려고 들숨날숨으로 얼마나 서둘렀을지 그 마음이 뜨거운 온기로 전해졌다.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안고 창가에 섰다. 빠르게 걸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내 도시락 쪽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도시락을 더 꼭 껴안았다.

반찬이 특별할 것도 없지만 누군가의 도시락을 받아본 기억이 오래되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준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는 오전 수업을 했고 고학년이 되면서는 급식을 했다. 딸이 싸준 도시락을 열었다. 제법 솜씨를 부렸다. 솜씨를 부렸다고는 했지만 엄마보다 손맛이 더 낫다. 물론 젊은 세대들이 하는 메뉴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먹는 가정식도 맛을 내는데 끼가 있다. 도시락에 담긴 반찬 가지 수가 제법 되었다. 시금치나물은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너무 삶아져서 먹을 수 없는데도 적당하게 잘 데쳐져 식감이 좋았다. 멸치조림과 꽈리고추 볶음 옆에는 가지 무침까지 먹음직스럽다. 그 겨울 어머니가 싸온 도시락을 보는 듯했다.

그때는 사는 곳이 시골이니 별달리 특별한 반찬이 없었다. 어머니가 두고 간 따뜻한 도시락 보자기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금방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도시락 귀퉁이에는 노른자를 봉긋이 살린 달걀이 김이 오르는 밥을 예쁘게 덮고 있었다. 달랑 무가 달린 무청에 마른 풋고추를 절구에 찧어서 만든 잘 익은 무김치가 따뜻한 밥과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 기억에 남는 도시락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한 번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혼자서 탁자에 펼쳐진 도시락을 먹었다. 그냥 울컥했다. 나이가 들어도 오래도록 품속에만 끼고 살고 싶었는데 딸아이는 내가 염려하는 내 기대치 이상으로 자랐다.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가끔은 어머니와 같이 하지 못했던 많은 시간을 딸과 오랜 시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딸에게 갖는 애틋함이 함께 있으면서도 일에 지쳐서 소원했던 이유라면 어머니에게 갖는 애틋함은 물리적인 거리에서 오는 안타까움이다. 둘은 늘 끊어낼 수 없는 내 삶의 진행형이다.

가마솥에 갓 지은 밥을 식을까봐 품안에 꼭꼭 안고 달려왔던 어머니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이제는 지팡이를 의지하고 산다. 금쪽같은 자식들의 사는 모습을 보러 아들내 집에 다니던 때는 이제 꿈이 되어버렸다. 가슴 시리게 키운 자식들을 기다리는 일이 전부다. 자식 바라기를 하다가도 기회가 되어 우리가 어머니를 보러 가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단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돌아오는 걸음이 많이 아프다. 자주 찾아봐야지 하는 마음도 일상에서 공수표가 되고 만다.

봄이 오면 나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으로 도시락을 싸야겠다. 당신이 생에 한 번은 가고 싶었던 곳과 행상으로 생을 걸었던 길도 같이 가고 싶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지팡이가 되어서 그 어느 겨울날의 도시락을 이야기하며 전라도로 경상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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