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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란 것을 드문드문 받아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수상자 후보군에 들었을 때의 설레는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상을 받은 뒤에는 대개 그 무게로 인해 마음이 자유롭지 못해 족쇄라는 낱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상과는 무관한 일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중견기업을 거느리는 사람이다 보니 본인이 상을 주거나 격려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자신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어느 결에 회갑이 다가와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보니 바빴던 기억만 자신의 이름과 짝패가 되어 있더란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상이란 본래 부상이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녀도 이번 기회에 부상으로 귀걸이를 준비하려고 보석상점에 갔더니 가격이 만만하지 않아 고민스럽다는 것이다. 그녀의 고민은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 자신보다 주변을 의식하는 습관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망설이는 그녀의 등을 밀었다. 자신에게 상을 주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며 부담스럽다면 귀걸이는 한쪽의 것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머지는 또다시 상을 주고 싶은 날이 오면 마저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응원하고 상을 주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일까. 나도 나에게 상을 주고 싶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순전히 양심을 향해 물어봐야 할 일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든다. 냉정하게 나를 돌아보려는 데도 그게 쉽지 않다. 콧등을 찡하게 하는 어느 순간에 봉착하면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 대견해하고 만다.

나는 며칠 동안 내가 나로부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검토하고 심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끔은 감탄사가 흘러나올 만큼 흡족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스스로 눈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수상 자격이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엔 넘치는 것 같았다. 생각하지 못한 나의 인간적이고 훌륭한 점이 드러나자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감상에 빠졌지만 모름지기 심사란 그 대상의 빛과 그늘을 봐야 하는 법. 빛이 그늘을 덮고도 여유가 있을 때 상은 자유로운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자격을 묻는 일이라 냉정하게 그늘을 들여다보자니 눈길에 힘이 스르르 빠진다. 뚜렷하게 기억되지 않는 허물이라 해도 당당하지 못했던 일은 양심에 얼룩으로 남아 사람의 기운을 빼는 모양이다.

병도 환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진료가 한결 어렵고 불확실할 때가 있다. 갑갑한 병증처럼 뚜렷한 실수보다 매사에 모호한 처신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나의 태도는 결코 묻어버릴 수 없는 흠결로 다가왔다. 또한 난관에 처하면 생각과 입이 굳어진 듯 속수무책일 때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해결하면 어정쩡하게 무임승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나의 실수에 관대할 때도 있었다. 열 살 때 어머니에게 심하게 대든 일이 있었는데 당시는 부끄러워 사과할 때를 놓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릴 때 일이라는 핑계로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늘의 순간이 보인다. 양심에 남은 얼룩은 세월의 힘으로 지울 수 없는 듯 고스란히 존재를 드러낸다.

뜬금없이 날아온 상 이야기는 잊고 있었던 나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울에 달듯 빛과 그늘의 무게를 측량해 상을 주고받는다면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봉황의 이웃일 수도 있겠다 싶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상이란 어쩌면 격려와 응원의 의미가 더 크기에 너도나도 상을 주고받는지도 모르겠다. 버거운 현실에 꺾인 무릎을 세우는 일에 손가락 하나를 내어주는 일처럼.

최근에 나는 수많은 이름의 상을 봐 왔다. 그야말로 상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작고 큰 단체들은 적절한 시기에 수상자를 선정하고 시상을 한다. 상이란 단체나 조직이 굴러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격려와 칭찬, 용기가 주성분인 상은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도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심사하는 사람은 고심을 거듭하게 된다. 

나는 평소에 수상 자격 조건을 꼽을 때 무결점에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부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어떠한 상이든 필요할 것 같다.  

그녀가 부상으로 하필이면 보석 귀걸이를 염두에 둔 것도 이해가 된다. 마치 드림캐처와 같이 세상의 소리가 보석 귀걸이를 통과하는 순간 긍정의 기운이 되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기를 바라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수를 갓 지났지만 봄의 기운이 순하니 시작의 느낌이 좋다. 자신에게 주는 부상으로 올 한해를 통째로 걸고 우리 모두 함께 뛰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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