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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영미문학권에서 사랑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V. 드보라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누구나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 매사에 눈은 평안하고 입 꼬리는 살며시 올라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최고의 행복을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할 때라고 했는데, 역시 V. 드보라와 같이 사랑과 연결시켰다. 누군가는 소박하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세속적으로 평소 바라던 바가 모두 이루어질 때라고 한다. 이때도 역시 우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행복에는 눈물이 함께할 때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난 2008년 2월 초, 삼성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Happy Tears, 1964)'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눈물로 알려졌다. 2002년 11월 당시 경매 낙찰가가 715만 9,500달러(86억 5,000만 원)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거의 200억 원대다. 하지만 그 그림을 소장한 것으로 짐작되는 측의 모습 어디에도 행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행복을 돈으로 사는 것에는 눈물이 있어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실패와 절망을 딛고 일어났을때의
그 환희와 벅찬 감동
그것들의 진한 울림으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정한 행복에는 눈물 즉 고통이 함께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이 1957년 『김현승 시초』에 실은 '눈물'을 보면, 신이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라고 끝맺고 있다. 시인이 사랑하는 아들 곧 세상 가장 커다란 행복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즉 절대자 앞에서 흘리는 순수한 눈물로 극복하여 보다 궁극적인 가치로 나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행복이 고통을 이겨낼 때에야 더욱 궁극적인 행복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딤과 극복을 통한 궁극의 가치 획득 모습은 미당(未堂) 서정주가 1948년 『귀촉도』에 실은 '견우의 노래'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내용을 보면,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즉 직녀를 사랑하다 지은 죄로 이별의 고통에 내몰린 견우는 직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두 사람의 참된 사랑을 완성하려면 지금 이 순간의 괴로움을 끝끝내 이겨내어야만 한다고 다독이며 극복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고통 중에 물리적인 것들은 대개 한시적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들은 비교할 수 없이 길고 강도 또한 높은 경우가 많다. 최근의 미투(me-too)처럼 모욕과 수치, 고독감과 서러움 등 얼핏 손꼽아도 상당하다. 근래 필자는 이들 가운데 서러움의 몇 가지를 만난 적이 있다.

흔하게 겪는 경우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외로운 타지에서 아프거나 곯은 배를 안고 잠을 청할 때 몹시 서럽다고 느낀다. 그런데 몇 해 전 겨울, 우연히 시인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를 읽다가 서러움이 걸어오는 극빈의 길 하나를 새로 만났다. 가난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설렁탕 국물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짜다며 국물을 더 청해서는 식당 주인이 한눈파는 사이 아들 그릇에 부어줄 때, 시인은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필자의 가슴도 무엇인가에 치받쳐 울컥 눈앞이 흐려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랬으면서도 바로 내 가까이 있었던 서러움들에는 둔감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몹시도 당황스럽고 부끄럽다. 불과 얼마 전이다. 울산 중구 반구동 울산시민학교 지하 강당에서는 초등과정, 중등과정, 고등과정을 마친 늦깎이 학생들의 조촐한 졸업식이 있었다. 여느 졸업식장의 그 흔한 외부인사들이 그곳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그곳에는 학생과 선생이 있었고, 스승과 제자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고 축하의 악수와 아낌없는 박수, 뜨거운 흐느낌이 있었다. 여자라서 혹은 가난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고희를 넘긴 몇몇 분들의, 인어의 눈물보다 영롱하고 고귀한, 너무나 기뻐서 행복한 서러움의 눈물이 있었다.   

그곳 졸업생들 중 몇몇은 못 배운 서러움에 복받쳐 휑하니 뚫려버린 구멍 난 가슴으로 무려 70여년이나 인고의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을 맞고서야 다시 젖 먹던 힘까지 짜낸 용기로 도전했던 것이고, 앞줄을 읽고 그 다음 줄을 읽으면 벌써 앞줄 내용이 가물거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은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컴컴하고 서럽던 가슴의 구덩이가 거짓말처럼 메워지는 그날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화창한 그야말로 봄날이었다. 너무도 벅차게 아름다운 서러움에 온통 젖어서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았다.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득하고 깊은 구멍 그 서러웠던 구멍이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서러움의 눈물로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독한 서러움 혹은 실패와 절망의 구덩이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끝끝내 그곳을 벗어났을 때, 바로 그 순간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눈물이 그 행복한 서러움의 눈물이 진정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행복한 눈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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