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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필자의  휴가여행의 시작은 융의 발자취를 보기 위하여 스위스를 방문하려고 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이다. 융이 태어난 곳 그리고 그가 다닌 대학, 근무한 병원 등을 방문하려고 한 것인데 시간 등 일정에 맞는 상품이 취소되면서 대신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를 가는 여행으로 바꾸어야 했고, 발자취를 보는 대신 그의 배경을 보게 되었고, 나에게는 더 감동을 주는 여행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먼저 방문하게 된 로마에서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많이 봤던 그림과 사진들이서 직접 가보지 않았을 때는 그것이 그렇게도 감동일 줄은 몰랐다. 바티칸시국의 베드로성당으로 이동하기 전 현지가이드의 설명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인가. 정문에 바티칸이라는 현판을 보면서 사진에 담고 그러면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시스티나성당 안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천정화에 대한 그림 설명을 따로 했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그 열정에서부터 감동이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날부터 필자는 가지고 있는 수첩에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봐서 전전긍긍하면서 온몸으로 다 담아내려 했다. 그러면서 왜 좀 더 평소에 관심을 갖고 로마에 대해서 알아보지 못 했는가 아쉬움도 가지면서 그녀를 쫓아다니게 되었다.

그녀는 글쎄 40대는 안된 것 같고 원래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직장에서도 건축 일을 하다가 미켈란젤로에 '빠져서' 이탈리아에 와서 가이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로마와 미켈란젤로의 고향인 피렌체에 보인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광장이라고 소개해준 로마에 있었던 캄피돌리오 광장은 바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청동기마상이 있고 로마의 건국신화의 두 형제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녀의 설명으로 마치 그 신화가 살아서 곁에 와 있는 듯 또는 그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었다.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면서 '미켈란젤로는 그곳을 설계하면서 하늘에서 보면 세계의 중심으로 보이듯 그렇게 설계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언덕의 무늬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원들이 모여서 중심을 만들 듯 캄피돌리오는 그렇게 그려져 있었고 그 말의 어원에서 캐피탈이 생겼다는 것도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곳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녀 이야기를 적고 그것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일일이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았다. 물론 많이 아는 내용이고 천정벽화인 최후의 심판은 익히 아는 그림이다. 하지만 다른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해석에 추가된 단지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그림에는 거죽을 벗겨 옷처럼 들고 앉아 있는 이가 있다. 그가 미켈란젤로라는 것이다. 그 그림을 6년간인가 벽에 매달려 그린 것은 마치도 가죽을 벗기는 일과 같다고 했었나. 그녀는 사실 그냥 가이드가 아니고 피렌체의 거장 미켈란젤로에로의 진짜 가이드였다. 나는 그곳 이탈리아에서 그녀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가이드라는 직업이 글쎄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열정은 그런 것이었다. 그 여행에서 가이드 직업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듣고 그들의 스트레스에 대하여도 들었다. 그러면서 필자에겐 대한민국의 직장인들 그들의 고통과 불안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정규직 비정규직 그리고 취업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났는데 그럼에도 우리에게도 그녀가 가진 열정은 있는 것이겠구나 하고 희망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여러 가지를 느꼈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전체로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여행이 지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나라를 보면서 내 삶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고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인간의 역사성에 대한 것이다. 로마에서 보게 된 예술품도 마찬가지이지만 역사란 그냥 과거에 있었던 사실인 것만이 아니다. 작품도 그것이 그냥 그곳에 놓여있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그 광장도 만약 그녀 같은 가이드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현재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에서 의미가 나오지 그것이 그냥 외적으로 놓여있는 것에서 의미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인이 피렌체인 이었던 미켈란젤로에게 그렇게 빠질 수 있는가 생각했는데, 세계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신체적 존재는 한국에 있어도 사유의 존재는 이탈리아에 가있어 지금 그냥 지나치는 이 장소보다 애인이 있는 로마의 추억의 장소가 더 가까울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이 그 곳에 열리면 거리는 제거되는 것이 우리의 공간성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도 그것에 마음을 열어 감흥으로서 재 체험 될 때에 역사적인 작품이 현재에서 살아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로마에서 만드는 추억은 그러나 노인이 나중에 즐길 추억으로서가 아니다. 여기서 추억이란 '역사적 인식'으로서야 결국 미래도 열어젖힌다는 의미에서의 살아있는 과거로서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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