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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형 객관식 평가가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울산광역시교육청도 객관식 지필평가를 1~4학년에 금지하고 과정중심평가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성인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내어봅니다.

※ 다음 중에서 순 우리말로 된 식물의 이름이 아닌 것은?
① 히어리   ② 얼레지   ③ 이스라지
④ 히초미  

 

히어리
히어리
엘러지
엘러지
이스라지나무
이스라지나무
히초미
히초미

 

정답을 찾으셨나요? ①번 '히어리'를 볼까요? 히어리는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입니다. 히어리의 학명은 'Corylopsis coreana uyeki'이고  영어 이름은 'Korean winter hazel'입니다. 여기서 속명 코리롭시스는 개암나무를 닮았다는 뜻이고, coreana란 한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어이름 헤이절 또한 개암나무란 뜻이며,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겨울 개암나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어리의 잎을 보면 개암나무의 잎과 꼭 닮아 있습니다.

일본인 식물학자 우에끼(Uyeki)가 1910년 지리산 송광사 주변에서 처음 발견하여 '송광납판화'라 이름을 붙이고 1924년 학계에 발표했습니다. 납판화(蠟瓣花)란 꽃잎이 밀랍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히어리와 비슷한 일본식물을 납판화라 부릅니다. 일본 납판화와 비슷한 식물이 송광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니 송광납판화라 부른 것입니다.

이후 1966년 우에끼의 제자인 이창복 교수가 한국수목도감을 만들면서 송광납판화를 전남지방 방언인 히어리라는 새 이름으로 도감에 등록하면서 호적도 불분명한 일본말을 닮은 히어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외래어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니니 정답은 아닙니다.

이 히어리는 우에끼가 지리산에 오기 오래 전부터 낙랑공주가 떨어뜨리고  간 귀걸이를 달고 지리산 일대 여기저기서 살았습니다. 오리마다 심는 오리나무, 이십리마다 심는 시무나무 등과 같이 십오리마다 심겨지는 이정표 나무 시오리나무라는 아름다운 우리 향명(鄕名)으로 살아왔습니다. 지리산뿐만 아니라 경기도 광교산에도, 강원도 백운산에서도 살고 있었습니다. 잘 살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특산식물이 이름도 어려운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로, 시오리의 방언인 히어리로 침략의 말발굽아래에서 창씨개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무 시오리나무로 돌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①번 히어리가 정답이 아니면 ②번 얼레지는 어떨까요?
4월이 오면 천성산 무지개폭포와 원효폭포를 오르는 갈림길 초입 계곡에는 새색시들이 연지곤지 찍고 건너편 언덕의 진달래를 유혹합니다. 꽃말처럼 봄바람이 났는지 모릅니다. 매력적이고 이색적입니다. 무리지어 피는 얼레지입니다.
얼레지는 순 우리말입니다. 피부병의 일종인 '어루러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어루러기는 얼레지의 잎에 나 있는 무늬와 같은 반점들이 피부 곳곳에 생기는 곰팡이 질환입니다. 얼레지는 잎의 얼룩무늬에서 생긴 순 우리 고유어입니다. ②번도 정답이 아닙니다.

그럼 ③번 이스라지는 외래어에서 온 이름일까요?
이스라지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야에서 자생하며 산앵도나무, 산이슬나무라고도 합니다. 열매의 모양이 이슬을 닮은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함경도에서는 산앵도의 방언이 이스라지라고 합니다. 벚나무 속으로 학명(學名)은 'Prunus japonica nakai'입니다. prunus는 앵도, 매실, 자두, 복숭아 등의 열매를 통칭하는 라틴어 Plum에서 온 말이고 japonica는 일본에서 발견되었다는 뜻이며 nakai는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나카이의 적절치 못한 소행은 보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지는 일본에는 나지 않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이 친구가 한반도를 자기 나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말을 타고 전국을 누비는 일본 침략자의 말발굽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③번 이스라지도 정답이 아니군요. 

④번 히초미는 정답일까요? 들어 보셨나요? 이름이 예쁘지요. 히초미는 관중(貫衆)의 순 우리말입니다. 원산지가 우리나라이며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양치류입니다. 관중은 잎을 활짝 편 모양이 마치 과녁에 꽂힌 화살같이 보여서 관중이라 부릅니다. 히초미란 이처럼 아름다운 순 우리말을 두고서 왜 굳이 관중이란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답이 없군요. 왜 정답이 없는 문제를 냈을까요? 이 밖에도 마타리, 고치미(고비), 모데미, 어수리, 비비추 등 외래어 같지만 순수한 우리말로 된 식물이름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순 우리말의 식물 이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태화초등학교장·녹색지기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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