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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경부고속도로가 빤히 보이는 경주 내남 부지리 마을 뒷산에는 어린 시절 참꽃이라 부르던 진달래가 한창때를 막 벗어났을 게다. 동시에 빼곡한 솔숲에는 아쉬운 연분홍을 시기하듯 요염한 철쭉이 흐드러지고, 솔잎은 더욱 청푸른 미소로 실바람에 솔향을 흩뿌릴 것이고, 인근 청보리밭 절구통 허리가 바지 바깥으로 미어터지는 보릿대 냄새까지…. 이른바 "山 넘어 南村에는 / 누가 살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 南으로 오네 // 꽃피는 四月이면 / 진달래 향기 / 밀 익는 五月이면 / 보리 내음새(김동환, 조선문단 18호, 1927)" 노랫가락이 절로 흥얼거려지는 만춘이다.

 

꽃향기는 백리 가고
술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 향기는 만리를 가고 남는다


참으로 흥성한 그곳 자연의 난만한 밥상을 천년도 더 전부터 봄이면 끼니마다 느긋느긋 즐기는 사람 있으니, 신라 35대 왕이었던 김헌영(金憲英) 소위 경덕왕. 그는 필자가 보기에 세상 가장 상팔자 군주다. 살아서는 삼한일통(三韓一統) 후 나라를 가장 안정시켰던 부왕 성덕대왕과 바둑에 빠져 살던 친형 효성왕이 밖으로 당과의 외교도 다져놓은 위에 보위를 이어,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석굴암,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 월정교 건설에다 이두의 설총과 안민가의 고승 충담사 등이 문재를 꽃피웠고, 국제정세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여 치적까지 쌓아 유방백세(流芳百世)했고, 붕어 후에도 저렇듯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흠이라면 전제왕권강화책으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추진한 것은 뼈아프다. 지방 군현과 중앙관부의 관직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어 소중한 순 우리말을 상당수 잃어버린 결과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당대의 그로선 필연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다 좋을 수는 없으니 그만하면 유방백세와 사후 호사가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향기 하면 단연 꽃이다. 이즈음의 라일락, 난초, 아카시아, 장미, 해당화는 그 향기가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인들은 사람의 인품을 향기에 비유하곤 했다. 석가의 가르침을 쉬운 비유로 전하는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쌍요품(雙要品)은 그 대표적 예다. 그 중 하나에는 길에서 주운 낡은 종이와 새끼줄 얘기는 꾀 인상적이다. 그는 향기로운 향을 쌌던 낡은 종이에는 여전히 향내가 났고 비린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 토막은 여전히 비린 악취가 나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켰다. 그리고는 본 바탕에는 본래 아무 냄새도 없지만 가까이 하는 것에 따라 시나브로 물들면서도 인간은 그를 미처 깨닫지 못함을 일깨우고 있다.

예수, 석가모니 등 성인에서부터 슈바이처, 마더 테레사, 오스카 쉰들러 등 우리 인류 중에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한둘 아니다. 쓱 둘러보면 평범한 우리 주변에도 의인, 소방관, 고속도로 구조대, 간병인, 요양보호사, 간호사, 의사, 군경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참으로 생각만 해도 향기롭다. 그런데 그런데도 인권유린, 갑질, 밀수, 탈세, 탈법, 무고, 사기, 폭력, 절도, 유괴, 납치, 성폭행에 살인까지 악취 진동하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서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삶인데, 참으로 마음 아프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네덜란드의 스피노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했고, 프랑스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역시 인간을 '관계의 존재'로 설파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어렴풋 답이 나올 것도 같다. 하긴 어렵게 갈 것 없이 우리네 의식주만 봐도 답 나온다. 남의 손 거치지 않은 것이 있던가? 없다. 지금 눈앞에 진동하는 악취는 우리 모두가 '관계'의 소중함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천상천하에서 '나'만 생각하고, 그 소중한 '나'를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존재케 하는 '나'이외의 존재 곧 나와 똑같은 무게를 지닌 '타인'과 연결된 손을 놓아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그 관계가 끊기는 순간 고인 물처럼 우리 영혼이 썩어 들어가며 악취를 풍긴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타이탄 아룸(titan arum) 꽃의 악취는 가히 세계적이다. 그런데 그것은 꽃가루를 옮기는 파리를 부르기 위한 신성한 생명현상이다. 우리에겐 민족반역자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등 을사오적(乙巳五賊)이 유명하다. 특히 을사늑약(1905), 경술국치(2010), 고종시해(2019)까지 두루 연루된 이완용은 당연 압권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권셀 누렸어도 그날 이후 그 악취는 자손백세를 가도 남을 것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고사에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란 얘기가 있다. 곧 꽃향기는 백리 가고, 술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 향기 곧 인품은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누군가는 향기 없는 꽃은 꽃이 아니라 극단 한다. 너무 과욕이다. 향기 나는 꽃은 채 10%도 안 된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잎이 무사의 검을 닮은 새빨간 글라디올러스, 꽃말이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동백꽃조차 아이러니컬하게도 향기가 없다. 그래도 그들은 향기는 차치하고 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답고 넉넉하며 가슴 벅찬가. 온 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진달래를 보라. 진달래도 사실 향기가 없다. 심지어 앞서의 김동환 같은 시인은 없는 그 향기조차 느끼지 않던가.


나는 향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저 부지리 마을 뒷산 경덕왕릉가의 진달래꽃처럼 매순간 활짝활짝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다 가면 좋겠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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