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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뉴스에 어느 배우의 결혼 소식이 나오고 있다. 웨딩드레스가 아닌 한복차림으로 시집간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족두리 쓴 예쁜 배우의 소려히 꽃수 놓은 연미색 한복에 분홍색 옷고름이 달려 있다. 은은한 한복도 아름답지만 화사한 분홍 옷고름 하나가 시집가는 새색시임을 단번에 나타낸다. 길지 않게 사뿐히 매어져 있는 분홍빛 옷고름이 세상에 없이 행복한 새신부의 증표로 채색된다. 그저 나붓이 빼어 낸 두 가닥 옷고름인데 색깔에 서려 든 저력이 저리도 선명하다.

여자 아이들이 서너 살쯤 되어 스스로 모양과 색깔을 선택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대부분 분홍색을 선호한다.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손녀도 한때 '분홍공주'였다. 네 살부터 3학년이 될 때까지 무엇이든 분홍색을 좋아했다. 옷, 신발, 머리 리본, 학용품 등 모든 것을 분홍색으로 간직하려 했다. 세상에 대한 순백의 하얀 마음 바탕이 본능적으로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의 분홍색에 닿고 싶은 것 같다.
나 역시 난생 처음 분홍색을 대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950년대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어머니가 사준 12색 '지구표 크레용'. 세 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시골집에 보내져서 일곱 살이 되어 입학식을 앞두고 부산의 부모님한테로 온 내겐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토록 귀엽게 팔랑거리던 노랑나비 색깔도 노랗게 크레용들 속에 섞여 있었다. 봄이면 앞산에 지천으로 피던 진달래꽃 색도 크레용 곽 속에 나란히 들어 있어 놀라웠다. 진달래 색이나 분꽃 색인 줄 알았더니 분홍색이라고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다. 미술시간에 크레용을 쥐고 그림을 그렸다. 시골집밖에 모르던 나한텐 그때까지도 서먹한 우리 집을 그리고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나를 그렸다. 나한테 노랑 스웨터를 입히고 분홍색 치마를 입혀 색칠했다. 분홍색이 제일 많이 닳아 없어져서 혼자 고민했다.   

딸애를 시집보내던 날 분홍빛 한복을 입었다. 신부 어머니는 분홍색을 입어야 한다기에 정성껏 지어 입었다. 딸자식의 행복을 비는 입장이어서 색이 자아내는 화평과 편안함을 상징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거의 한복을 입던 어머니에겐 연분홍색 저고리가 여럿 있었다. 천의 질감에 따라 색감의 차이가 나는 연분홍색들이었다. 짙은 감색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잔잔하게 펼쳐진 치마를 여며 입은 위에 연분홍 저고리가 고왔다. 저고리 소매 끝을 살짝 걷은 채 어머니는 빨래를 걷고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다 장독대에서 장을 뜨며 바지런했다. 봄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금 만든 쑥버무리를 디밀어 주곤 하던 분홍 저고리의 어머니가 예쁘고 평화롭게 보여서 내 마음엔 조용한 기쁨이 들어찼다. 세월이 흐른 뒤 결혼을 하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를 썼던 건 어머니의 분홍 저고리소매를 잡고 배웠을 듯싶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 '봄날은 간다'는 봄바람에 실없이 휘날리는 것이 '연분홍 치마'여서 무턱대고 덜컥 처연해지는 거다. 불어가는 연둣빛 바람에 연분홍 치맛자락을 맡겨 두고 어쩐단 말인가.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듣고 있노라면 여인의 젊음이 속절없이 쓰러져 가는 것 같아 아릿해진다. 생에 대한 체념의 쓰라림이 냉큼냉큼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인은 '오늘도' 연분홍 치마를 입고 나섰다. 아직도 사랑을 애틋하게 기다리는 것이리라. 가만히 보면 연분홍 치마가 새롭게 다가올 삶의 희망과 설렘 쪽으로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노래의 첫머리에 대뜸 천연덕스럽게 '연분홍 치마'부터 입혀 놓은 건 세상이 변치 않는 사랑으로 행복하길 염원해서일 터이다. 

봄날이 가고 여름 장마가 온통 종아리를 적시며 지나가고 가을이 또 오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생의 발등을 지우며 하루하루가 수북이 쌓여만 가는 것을 깨닫던 순간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꼭 하나 이루어 내는 인생을 만들겠다고 많이 나부대지 않았는가. 실패의 더미를 비켜 가려고 기를 쓰고 덤빌수록 외려 잃는 것이 주르르 생겨나지 않던가. 명백하게 되는 일도 없이 산망스러워지고 나대기만 하는 스스로가 되돌아 보일라치면 가슴이 휑뎅그렁해지곤 했다.

문득 고개 든 거기 어디쯤 가만히 걸쳐 있는 분홍색 노을을 보노라면 겨울 가로등 밑에 선 것 같던 마음 구석이 따스해져 오던 거다. 차라리 핏빛 노을엔 울컥해져서 못 본 척 할 터인데 분홍 노을은 경계도 없이 저 먼저 어른거리는 것이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생각 같다. 홀로 숨겨둔 깊은 탄식을 고즈넉이 흘려보낸다. 그 분홍빛 노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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