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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쏟아지던 폭우가 울던 아이처럼 뚝 그친다. 이런 날은 가슴이 설레어 나도 모르게 산책을 나간다. 장딴지가 적당히 긴장할 정도의 경사진 길을 걸어 도도록한 언덕 위에 서면 오감에 이완을 느낀다. 모처럼 맑게 트인 북쪽 하늘의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보라색 하늘 하나가 더 열린다. 장마 중의 우울했던 기분을 걷어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며칠 사이 훌쩍 커버린 원추리가 나와 키 재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맞추고 활짝 웃는다. 잠시 날씨가 드니 한껏 기운이 오른 녹색 잎사귀 사이로 껑충한 주황색의 화려한 군무가 상쾌하다. 기가 막히는 색의 향연이다. 처음으로 바람의 빛깔도 보았다. 바람은 상수리 잎에 앉더니 어느새 오동잎을 살짝 들고 고개를 내민다. 청아한 녹색 계열의 상큼한 이미지가 오르막으로 휙 날듯이 오르는 양이 가뿐하다. '그렇구나. 바람도 사랑을 하는구나.' 그 사람이 나를 찾아 집 앞 언덕길을 뛰듯이 올라올 때의 모습이다. 

가만히 보니 사방에서 사랑의 시를 쓰고 있다. 원추리와 당마가목에도, 으아리와 왕벚나무에도 말씀의 행간에 시심의 고명인 느낌표를 얹고 있지 않은가. 땅거미도 시어를 고르느라 하늘과 산마루 사이에서, 골짜기와 나뭇잎 사이에서 서성인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이 시를 쓰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줄 알았다.

사람은 표절 전문가였다. 자연의 엄밀한 창작 세계를 무시로 모방하고 때로는 아예 베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무용수는 까치걸음과 나비의 날갯짓을 모방하고, 화가는 캠퍼스에 풍경을 옮겼다. 정원 디자이너는 아예 집 안으로 생명을 옮겨다 놓았다. 문학은 어떤가. 활자의 조합으로 감히 자연을 자신의 시선에 맞추어 재단하고 뭇 생명의 생로병사를 개성이란 이름을 빌어 마구잡이로 늘어놓지 않던가. 이쯤 되면 사람이야말로 흉내 내기 선수라고 말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예술계는 물론 학계에도 표절 시비로 시끄럽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님은 맞다. 당연한 시빗거리지만 해일처럼 끓어오를 때는 검은 바다를 보는 듯 두렵다. 요즘은 인간이 품고 있는 정보의 세계가 바다와 다르지 않다. 다양성 또한 가늠할 수조차 없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체 집단 중 현화식물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한다. 만약 인간이 알고 있는 정보를 무게로 환산할 수 있다면 이들의 무게를 넘어서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소설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그 작가는 책을 워낙 많이 읽다 보니 어디에서 그런 실수가 나왔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을 했다. 일견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세상의 비난에 침몰하고 말았다. 인간의 까다롭고 모순된 표절의 기준이란 덫에 걸려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표절의 개념을 위키 백과사전에서는 '다른 사람이 쓴 문학작품이나 학술논문, 또는 기타 각종 글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베끼거나 아니면 관념을 모방하면서,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산물인 것처럼 공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개념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모방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 것들 중 자연을 모방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삶의 행위 자체가 모방의 연속인 것을. 나는 날마다 바람의 기운을 곁눈질하고 꽃의 미소를 옮기고 비의 고독을 베끼는 연습을 한다. 때로는 개꼬리에 흐르는 물의 윤회를 훔치기도 하고 밥벌이의 융통성을 위해 일개미의 노동 기술을 슬쩍한 적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작가라고 한다. 어쭙잖은 몇 줄의 내 글을 두고 평론가들은 일갈할 때도 있다. 씁쓸한 맛은 잠시고 나는 다시 모방에 열을 올린다. 염치없이 남생이잎벌레 짝짓기의 엄밀한 시간까지도 표절해 세상에 까발린다. 자연은 제 갈 길에 관심이 많지만 인간은 자신이 속한 세상은 물론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한 생명체인지도 모르겠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쏟아 놓으면 오롯이 내 것인 것이 있기나 할까. 평범한 일상에도 본인마저 알 수 없는 것들로 뒤섞여 있을 것이다. 삶이란 온통 모방의 연속인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증세는 더욱 구체적이고 심각해진 듯하다. 어쩌면 중독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장마 중 잠시 갠 저녁나절에 산책을 하다가 내가 표절 전문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에 펼쳐진 대자연의 경이로운 만 가지의 움직임과 자태는 심오한 창작의 행위였으며, 그들은 위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인들이 쓰고자 하는 간절한 한 문장이 그곳에 있었다. 예술가는 다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절할 뿐이다. 표절의 긴 역사를 이렇게 조우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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