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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속에 소파? 나체로 삐딱하게 누운 소녀! 거기에 졸렬한 붓놀림. 이게 유명한 작가 그림?

넝쿨이 우거지고 축축한 습기로 가득한 열대우림은 아니지만, 숲 속에 놓인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나부(裸婦)가 불편해 보인다. 나부에 눈길을 뺏겨 주위에 핀 꽃이 무슨 꽃인지 죽 늘어선 것이 눈에 띌 듯 말듯하다. 온통 초록색 식물이 저마다 다른 초록을 뽐내는 것 같다. 그 사이사이에 새와 코끼리, 뱀 등이 숨은 듯 만 듯 자리했다. 

가운데 피리 부는 흑인얼굴은 보일 듯 말듯 그렸고, 사자인지 의심이 가는 동물은 동그란 눈이 인형처럼 보인다. 그림 아래 부분에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과 잎은 잎맥과 명암까지 넣어 최선을 다해 묘사했다. 초록이 눈을 시원하게 하면서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를 주는 그림이다. 

하지만 그림솜씨는 형편없다. 능숙한 필치도, 섬세한 묘사도, 정확한 동물의 움직임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불편해 보이는 나부의 몸만 주목을 끈다. 이 그림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그린 것으로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다. 
 

앙리 루소 作  '꿈' 캔버스에 유채, 204.5×298.5cm, 1909, 뉴욕 근대미술관(MoMa) 소장
앙리 루소 作 '꿈' 캔버스에 유채, 204.5×298.5cm, 1909, 뉴욕 근대미술관(MoMa) 소장

 

1900년대에 파리 몽마르트를 드나들던 젊은 작가들로부터 '세관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앙리 루소(Henri Rousseau)가 있었다. 세관원이라고 해도 세금을 계산하고 징수하는 업무가 아니라, 지나가는 물품에 통행세를 받는 업무였기에 약간 놀림이 섞인 별명이었다. 

루소는 40살이 넘어서야 예술가를 해보겠다고 작업실을 꾸미고 세관원을 그만두었다. 물론 이전까지 일요일마다 화구를 들고 박물관이나 식물원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 그에게 조금씩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당시 전위 예술가들에게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거의 50살이 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1909년 루소가 죽기 한해 전,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피카소가 파티를 기획했다. 그러니까 29살 피카소가 65살 루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파티로 21세기 지금 우리도 머뭇거리게 할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날짜를 잘못 알고 있던 피카소는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었다. 

젊은 작가들 중에 두각을 나타내던 피카소와 마티스는 아프리카 조각과 같이 문명에 때 묻지 않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60살 넘은 루소가 자신들과 전혀 다른 그림, 원시적이며 소박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높은 찬사를 보냈다. 

이전부터 아폴리네르, 피카비아, 브랑쿠시 등등이 모여 루소의 작업실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는데, 이날은 피카소가 자신의 작업실로 아폴리네르와 루소 그리고 친구를 부른 것이다. 피카소는 임기응변으로 이리저리 사람을 보내고 작업실을 꾸며, 루소에게 왕좌와 같은 좌석에 앉게 해주었다. 

루소는 자신은 재능 있고 뛰어난 예술가라는 철석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기록에는 자기 그림에 매료되어 파리의 시장에게 이 걸작을 사서 시청에 걸어달라고 편지를 했다니, 자아도취가 심해도 아주 심했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파티는 흥이 무르익고 술로 취기가 오르자, 루소가 피카소에게 당신과 내가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이집트 풍, 나는 모던 풍에서 최고이지"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가 얼마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 깊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피카소는 루소의 작품을 많이 수집했다. 루소의 그림은 중고용품점에서 작품이 아니라 캔버스 재활용품으로 팔렸다. 이렇게 진열된 것을 피카소가 발견하고 사들인 것이다.

<꿈>은 루소가 죽기 한해 전에 그린 그림이다. 야드비가의 꿈을 그린 것이라고 그가 친절하게 소개한 긴 시도 남아있는 작품이다. 5월 어느 따뜻한 봄날에 한가하게 낮잠 속에서 나타난 꿈처럼 달달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생경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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