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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유세지원을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 필승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암중모색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선거 현장에서 드러난 자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시작과 함께 대국민 호소와 경제심판론, 1당 독주 견제론 등을 거론해온 홍대표가 현장민심을 제대로 읽었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은 글쎄요다. 평양발 역북풍에 이상난동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빨갱이'에 '여론조작' '샤이보수'까지 목청을 돋우지만 홍 대표를 향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온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선지 얼마 전부터 홍대표의 구호가 변했다. 위장쇼와 가짜평화 이야기는 쑥 들어가고 '경제심판론'이 첫 화두가 됐다.

 

지난 주말 홍대표는 울산을 찾아 경제 관련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제심판론을 꺼내들었다. 홍 대표는 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라면서 일자리가 사상 최악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민생이 파탄에 이르렀는데 남북관계 하나로 모든 걸 덮으려하지만 국민들이 거기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당에서는 괴담수준의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왕 이런 식이라면 제대로 한번 완전히 바닥까지 가보는 것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 때 홍 대표는 궤멸수준에 이른 보수우파를 막말과 거친 입담으로 800만표에 육박하는 표를 끌어모아 숨통을 열어놨다. 득표율이 24%로 안철수를 제치고 2위였다. 박근혜의 끝없는 추락을 목격하는 시기에  대부분의 보수우파들이 안방으로 기어들어간 시점이었지만 홍준표의 막말 덕에 그나마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깃발을 내리지 않아도 됐다. 딱 그 지점이었다. 미국으로 떠나 불과 보름만에 돌아온 홍대표가 다시 정치재개를 외치는 순간, 보수의 궤멸은 가속도가 붙었다.

정치 9단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해보자.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영삼과의 일전에서 패한 DJ는 대선 패배가 확정된 새벽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언론은 광주에 '검은 비'가 내렸다고 전했다. 새벽부터 동교동에 줄을 이은 DJ 지지자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DJ의 정계은퇴를 만류했다. 다만 단 한 사람, YS의 생각은 달랐다. DJ가 정계를 은퇴한다고 선언했을 때 YS만은 DJ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할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장담했다. 실제로 DJ는 2년 여 뒤 영국에서 돌아와 1995년 6월에 실시된 첫 지방선거 유세에 나섰다.

당시 DJ는 유세 현장을 누비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DJ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김영삼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접두어처럼 따라다녔다. 정치 9단의 화법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성공해야 양김이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게 아니겠느냐"며 “난 진정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 국정을 논하고 싶다"고 했다. YS가 민주화동지임도 수차례 강조했다. 당시 정치 평론가들은 “DJ가 YS의 성공기원제를 올리는 것은 성공해도 좋고, 못하면 좋은 정치적 공격거리"라고 분석했다. 여당인 민자당과 청와대는 DJ 맹공에 나섰지만  결과는 DJ의 승리였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제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마이크 소리는 요란하지만 갑작스러운 불볕더위에 거리는 썰렁하다. 언론의 관심도 연일 평양과 워싱턴, 그리고 싱가폴에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의 장사수완과 김정은의 속내,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폴 비행기 탑승여부부터 뭘먹고 돈은 누가 내는지까지 지상파든 종편이든 열이 났다. 모든 관심이 북한에 쏠린 지방선거는 그래서 그냥 공기만 후끈 달아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실수만 안하면 그저 먹고들어간다.

가능한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시절 찍은 사진 한 장이라도 찾아 그럴듯하게 걸개로 걸면 그만이다. 사진이 없으면 합성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하지만 야당 상황은 다르다. 어떻게 하든 반전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인데 홍준표 대표의 입이 불안하다. 언제 어떤 말이 툭 튀어나와 며칠 애써 닦아놓은 표밭을 망쳐버릴지 연신 조바심이 난다. 문제는 바로 홍 대표의 입이다.

흔히 샤이보수를 이야기 한다. 숨어 있는 보수들이 13일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 한송이씩 들고 나와 보수의 재건을 알릴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글쎄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안하지만 보수는  궤멸 상태다. 보수의 궤멸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체제를 유지하는 튼튼한 기둥 하나를 잃게 된다.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 아니 역사는 보수와  진보의 끊임없는 충돌의 과정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보수라는 기둥하나가 완전히 썩어 정체성의 상실과 가치에 대한 진정성 결핍으로 불치의 상황에 내몰렸다. 막연한 샤이보수에 기대어 13일의 아침을 맞이한다면 보수의 궤멸은 '실화'가 된다. 출구가 안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바로 답이다. 박근혜로 시작된 보수의 해체는 홍준표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 답이 바로 홍준표에 있다. 스스로 결자해지 하는 결단이 필요할 때다. 아무도 안믿겠지만 정계를 떠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1992년 새벽, DJ가 썼던 정계은퇴 성명서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아침이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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