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자리 상황에 대한 각종 지표가 충격적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 이후 8년여 만의 최악이다. 실업률은 4%로 외환 위기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나빠졌다고 한다. 지난 3월 실업률이 17년 만의 최고라고 했는데 두 달 만에 갈아치웠다. 청년 실업률은 10.5%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이다. 급기야 경제부총리가 "충격적"이란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 근로시간의 획기적 단축으로 모든 사업장이 주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1년의 유예기간 뒤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이 적용된다. 이러한 조치의 궁극적 목표는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업무 생산성을 강화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법 개정의 취지와 방향성은 맞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 약자를 위한다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일자리부터 줄이는 역설이 본격화됐다.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도 고용에 쇼크를 줄 가능성이 있다.

기업과 구직자가 동시에 직면하고 있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귀를 의심할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검찰은 전국 6개 주요 은행의 채용비리에 대한 8개월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은행들은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채용자격 조건을 임의 변경하거나 점수 조작을 일삼았다. '청탁 대상자 명부'를 만들어 특정 지원자를 관리한 은행도 많았다. 부행장 자녀와 이름·생년월일이 같은 응시자를 위해 논술점수를 조작해 필기전형에서 합격시켰다가 면접 과정에서 부행장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탈락시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임원인 아버지가 딸을 면접한 뒤 최고 점수를 주고 합격시키는 기상천외한 일까지 있었다. 가히 채용 비리의 백화점이다. 신뢰가 생명인 은행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민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이 이 정도라면 권력의 입김에 더 민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기업 채용은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종인 은행에서 이 같은 특혜 채용이 수년간 이어져왔다는 사실은 취업 준비생은 물론 국민 모두를 분노케 한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 치우는 가운데 수많은 청년이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불안 속에 구직시장에서 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횡행하는 채용비리는 취업 준비생은 물론 그 가족까지 좌절하게 만드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힘 있는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회의 평등을 허물어뜨리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나.

해외사업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고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강의했던 필자로서는 이 즈음에서 우리 은행들의 국제 경쟁력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금융기업을 갖지도 못하고 금융 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인가. 작금의 은행 채용비리를 보면서 이런 기대는 애초부터 일장춘몽이었나 싶다.

공정한 기준에 따라 경쟁력 있는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은행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근간이었을 텐데, 채용에서 그런 비리를 일삼았다는 것은 비리에 의해 자격 미달의 어떠한 사람을 뽑더라도 괜찮다는 것이니 은행 스스로 자신들의 자질을 하찮게 평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은행의 경쟁력 따위는 애초 안중에 없었을 테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어느 정치 구호가 생각난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랑받고, 상식선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통하며, 땀흘린 만큼이 내 몫인 그런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