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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통 청소를 한 남편의 얼굴이 새까맣다. 남편에게 물휴지를 건네고 나도 얼굴을 닦았다. 서로 새까만 얼굴을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다.

몇 년 전 인근에 밭 한 뙈기를 장만했다. 이름만 답으로 되어있고 황무지가 된지도 꽤 되어 오래도록 방치된 논이었다. 우거진 잡목 사이에는 짐승들이 낸 길이 반질반질했다.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고르기를 반복하고 거름과 각종 퇴비를 부었다. 오래 묵혀둔 탓에 흙은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어렵사리 밭을 만들어 각종 과일나무를 심었다. 나무마다 하나씩 꽃을 밀어내어 계절을 알리기도 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것이 신비로울 정도였다. 쉽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뜨거운 뙤약볕에서 근근이 살아남았다. 서툰 농부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우리 부부의 노력에 비해 풍성한 선물을 준다. 밭의 변화가 궁금해서 자주 발걸음을 하게 된다. 도심 가까운 곳에서 나름 자연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텃밭 난로연통 새들의 둥지탓에
언몸 녹일 불떼기는 포기했지만
춥고 불편함으로 다시찾은
소소한 행복을 위한 농사의 의미


산속이라 겨울에는 많이 춥다. 도심에 비해 한 낮에도 살을 에듯 기온이 떨어진다. 겨울에는 밭에서 나는 것들이 없으니 아무래도 봄여름 보다는 발길이 뜸하다. 가끔이라도 가게 되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하나를 지었다. 농사에 필요한 도구도 넣는 창고로 쓰면서 바람막이로도 사용한다. 거기다 궁여지책으로 작은 화목 난로 하나를 만들어 잠깐씩 추위를 피한다. 그래서 봄여름 가을도 좋지만 느리고 추운 겨울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어느 늦겨울과 봄 사이에 밭일을 하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잠깐 난로에 불을 피웠다. 그런데 난로의 불이 잘 들지 않는다. 하우스에는 난로에서 나오는 연기로 가득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풍향 때문이라고도 여겼다. 예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지금보다 더 전부터 그랬나 싶기도 했다. 다시 불을 피웠는데 종이와 땔감이 타지 않았다. 굴뚝에는 아예 연기가 하나도 빠져나가지 않고 실내에만 자욱해서 불 지피기를 포기하고 남편은 연통 청소를 했다.

천정 지렛대에 엮어둔 철사를 풀고 연통 이음새를 뜯어 바닥으로 틀었다. 새까만 숯검정들이 검은 비처럼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바깥쪽에 있는 끝부분 까지 당겨 내려서 손을 넣었다. 그 속에는 놀랍게도 연통 끝에 새집이 하나 있었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새집은 모양을 갖춰가고 있는 중이었다. 더 안쪽 깊숙한 곳까지 주변에서 물고 온 마른 풀과 이끼까지 가득 막혀서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연통이 은밀한 새들의 집터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겨우 추위를 피하려고 무심코 만든 난로와 연통이 생명을 죽일 뻔했다. 새가 알이라도 품고 있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으니 아찔했다. 새들에게는 아마도 어둡고 좁은 연통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아 새 집터로 안성맞춤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터전이라고 만든 곳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새들이나 동물이 마음껏 노닐 수 있는 자연으로 그것들이 주인이다. 자연스럽게 지낼 그들의 터전을 우리가 잠깐 빌려 쓰는 것이다. 욕심 때문인지 늘 잊고 산다. 연통 청소를 하고 한가득 쏟아진 이물질까지 담아 밭에 뿌렸다. 가벼운 새 집이 동그랗게 바람에 날린다. 임시방편으로 새가 연통으로 들지 못하게 철망으로 막아 보려는 생각도 했다. 언제 새들이 또 이곳도 품속처럼 아늑한 곳 이라고 날아들어 집을 지을지도 모른다. 

새들과 우리가 한 공간에 있다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우리는 텃밭 일을 하다가 지금처럼 날이 추우면 잠깐 잠깐 자연 속에서 곁불을 얻어서 견딜 생각이다. 찬기를 녹이는 이곳에 새집을 지어서 알을 낳아 안전하게 새끼를 데리고 떠나는 것처럼 우리도 그것들처럼 아주 잠깐 씩 머물다 갈 것이다. 새들과 우리가 하나의 공유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통을 다시 만들 때까지 체크하고 불을 피우는 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다행이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으니 불을 지필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추우면 옷 두껍게 입고 견뎌 볼 생각이다. 자연에서의 생활은 조금 불편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염두에 두었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면 당연하다 싶다.


조금 불편한데로 살아가다 보면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가고 그것도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해지겠지 싶다. 새가 내 처마 밑으로 들어와 둥지를 트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어릴 때 제비가 시골 처마와 도심 주택에 둥지를 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새들과 우리가 들고 나는 시간이 같지 않으니 서로 불편할 것도 없다. 새들이 와서 머물다 가고 나무들이 바람까지 품고 나면 산 빛이 낱낱이 기억하리라 일기 같은 어제의 것들을.

날마다 이곳의 심리적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유를 알겠다. 이름 모를 새들의 발자국도 허공에 그려보며 가볍게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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