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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려두었던 행장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달렸건만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전 시간이 절반 지나갔다. 갈 길이 바빴다. 천하절경도 고단함을 물리칠 수 없는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이 버거웠다.

 

남을 위한 작은 친절에도
쌓이는게 공덕,
백만석의 쌀보다
마음 보시가 더 크다는데…


쉬었다 일어나면 금세 꿰찬 피로를 달래며 영시암, 수렴동대피소, 쌍룡폭포를 지나 봉정암에 도착했다. 불자라면 누구나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오르기를 소망하는 곳이 아닌가. 지쳐도 지친 내색 없이 걷다 보니 두 다리가 성치 못했다.

간신히 법당에 들러 참배하고 여장을 풀기 위해 종무소에 들렀다. 108동 6호실 2번 자리표를 내어 주었다. 배정받은 방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따뜻했다. 안쪽에는 먼저 온 불자 서너 명이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내게 주어진 나만의 자리를 찾아보았다. 희미하긴 하나 폭 40에, 길이 120 센티미터 크기의 선 안에 숫자 2가 적혀 있었다. 좁은 사각 틀과 방석 두 개가 하룻밤 선물로 할당되었다. 아무리 봐도 160 센티가 조금 넘는 키로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아직 비어 있는 칸들을 볼 때 못해도 이십여 명은 더 들어올 것 같았다.

여장을 풀고 나니 공양 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공양이라야 미역국에 오이무침 몇 조각이 전부지만,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허기를 달래고 돌아오니 그사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로 방안은 복잡해지고 어수선했다.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세면장도 협소하긴 마찬가지였다. 수도꼭지 하나에 세숫대야 서너 개가 전부였다. 줄을 서서 양치만 하다시피 하고 세안을 끝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돌아왔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뻐근한 무릎으로 남들처럼 절을 할 자신이 없었다. 가까스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니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옆 사람이 내 자리까지 차지하고 누웠는데도 꽉 차 보였다. 간신히 비집고 누우니 발이 벽면에 부딪혔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접고 칼잠이라도 청해야 하는데 코르셋을 껴입은 듯 갑갑했다.

드문드문 철야 기도를 하러 가고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 옆자리에 누운 사람은 그나마 나아 보였다. 다들 지쳤는지 일찍이 불이 꺼졌다. 눕자마자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군데군데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멈추었다. 그중 경기도 동탄에서 온 팀 대여섯 명은 다들 잠이 들었는데도 말꼬리가 끊임없다. 어둠 속에서 딴엔 목소리를 낮춰 가며 말을 해도 듣는 내 귀는 나팔같이 벌어졌다.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다들 죽은 듯이 까무룩 잠들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천정이 트인 칸막이 건넛방에서 일침이 날아왔다.
"저기요"
"…"
"그 잠 좀 잡시다, 할 이야기 있으면 밖에 나가서 하세요."
순간, 소위 '절간 같은 분위기'라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하는 것 같았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이제나저제나 이야기가 끝이 나길 기다렸던 나로서는 가슴에 쌓인 체증이 풀린 듯 속이 후련했다. 다시 잠자리를 고쳐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친지 한 시간은 지났을까, 이번에는 건넛방에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귀엣말로 속살댔다. 어라, 그것도 모자라 불까지 켜며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갔다. 아까 시끄럽다고 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같은 방에서 그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넘고 있었다. 다들 곤하게 잠들었는데 나만 예민해서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었다. 아까 언짢은 소리를 들은 사람이,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보기 좋게 한 방 먹였다.

"이 봐요, 보살님들, 절에 왔으면 조용히 기도나 할 일이지 이 야심한 시간에 뭐 하는 겁니까? 듣자니 해도 해도 너무하네, 이 절 전세 냈나."
이쯤 되면 잠자긴 틀렸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어느 쪽 입심이 더 센지 속으로 즐길 준비가 되었다. 모름지기 싸움이 되려면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자기네들끼리만 웅성거렸다. 약이 오른 우리 방 사람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어 힘을 가했다.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나, 저거 집 안방에서 떠들지 왜 절에 와서 난리야"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 기차 화통 같은 강펀치를 날아왔다.
"다리에 쥐가 나서 그래요, 다른 사람 입장을 모르면 입이나 다물고 조용히 잠이나 자시지 뭔 말이 많아요, 많긴…"
"…"

길게 이어질 것 같았던 접전이 쥐가 내렸다는 한마디에 끝이 났다.
더는 잠을 청할 수 없었는지 몇몇이 올라올 때 마주쳤던 멧돼지 이야기를 해댔다. 그중 한 사람은 멧돼지가 꼬리를 흔들며 자신을 반기더라고 했다. 영시암 근처에서 멧돼지 동영상을 찍어 아들딸에게 보냈다가 무모한 엄마로 한소리 들은 뒤라 나도 할 말이 없진 않았다. 내가 보기엔 가족을 잃고 혼자 헤매는 것 같았는데 새끼 짐승 한 마리를 두고 느끼는 감정이  확연히 달랐다.

멧돼지의 처지가 아니라서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기도처로 유명한 봉정암이 아닌가. 배려가 부족한 절집의 하룻밤이 아쉬웠다. 

공덕이란 부처님 앞에서 절만 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남을 위한 작은 친절 하나에도 쌓이는 게 공덕이라 했다. 백만 석의 쌀을 시주하는 것보다 마음 보시가 크다는데 나를 포함한 밴댕이 중생들을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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