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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조류생태 박사
김성수 조류생태 박사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세기2:3) 시간적 거룩과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3:5) 공간적 거룩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19:6),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애굽기20:8). 성경에는 거룩 혹은 거룩한으로 기록됐다. 성경에서 '거룩'은 밝음, 따뜻함, 새로움, 헌신 등으로 상징된다.

중국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봉황새 같이 한국인의 심성에 상상의 새 '거룩새'가 현실에 나타난다면 이는 분명 '천상의 새'라 부르는 학(鶴·두루미)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학은 성경의 거룩과 같이 밝음, 따뜻함, 새로움, 헌신 등을 겸비한 멋진 새이기 때문이다.
첫째, 밝음이다. 학은 밝음을 상징하는 새이다. 밝음은 푸른 하늘(蒼空)을 힘차게 나는 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학은 어둠을 밝히는 울음을 운다. 학은 여명에서 울기에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가져오는 광명의 새이기도 하다. 학은 광활한 습지에서 물안개를 배경삼아 여명을 제일 먼저 알리는 새다. 철원의 한탄강, 일본 북해도(北海道) 쿠시로(釧路) 세쯔리가와(雪裡川)의 두루미 울음소리를 듣기위해 영하의 기온도 마다하고 겨울철이면 반드시 찾는 이유이다. 여명의 학 울음소리는 신비롭게 느껴진다. 밝음은 동쪽을 향해 비상하는 학의 비상성에서 부각된다. 학은 양조(陽鳥)이며 밝은 곳을 찾고, 해 지는 서쪽으로 날아온다. 학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조류가 아닌 낮에만 활동하는 주행성 조류이다.

둘째, 따뜻함이다. 두루미란 울음소리가 뚜루루∼뚜루루∼하고 운다고 하여 두루미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두루미를 '두루 아름다운 새'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새끼와 함께 걷는 한쌍의 부부 두루미가 습지를 걸어 다니는 광경에서 부부, 가족의 따뜻함을 느낀다. 일본 이시가와(石川)의 두루미를 찾은 치매환자는 학이 강가에서 먹이 찾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비로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인솔자는 "할머니들이 이곳을 찾으면 웃음을 잃지 않아요. 아마도 어릴 때 추억을 기억하나 봐요. 가끔씩 이곳으로 모시고 있답니다!" 십 수 년 전 필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 우연히 그들 앞에서 즉석으로 울산학춤을 추었다. 웃음은 따뜻함에서 비롯한다. 심성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새가 두루미다.

셋째, 새로움이다. "공중의 황새는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예레미야 8:7). 성경에 기록된 황새(Stork)·멧비둘기·제비·두루미(Crane) 등은 계절을 알고 새로움을 전하는 새로 기록하고 있다. 새로움은 약속을 지킴으로 시작된다. 텃새형 두루미와는 다르게 대륙 이동형 두루미는 반드시 계절을 알고 약속을 지킨다. 그 약속은 새로움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두루미는 '남을 마음을 헤아려 자신을 생각하며, 때를 알아 변함을 인식하는(矩之道知時識變)'새다. 새로움은 성도에게는'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이며, 자연에서는 두루미가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새로움의 전령사이다.

넷째, 헌신적이다. 학은 헌신적인 새이다. 가톨릭 성직자를 신부를 거룩새 두루미에 비유하고 싶다. 헌신적인 성직자에 따라 수단의 색깔이 다르게 착복하기에서 동기부여 받았다. 사제는 검정색 혹은 흰색, 주교는 진홍색, 추기경은 적색, 교황은 항상 백색을 입는다. 검정색, 흰색, 진홍색, 적색, 백색 등은 멀리서도 쉽게 구별되는 부각되는 색이기에 투명한 색이다. 무당개구리, 무당벌레 등이 자기 색을 구태여 드러내는 것과 같이 성직자의 성의(聖衣)는 선명성을 통해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고통 받는 모든 생물을 위한 헌신의 상징인 셈이다. 드러나는 색을 보면서 희망과 소망을 기도하고, 그 색을 보면서 묵상하는 것은 닮아 가고자하는 헌신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두루미의 몸은 이마는 붉은 홍(紅), 목덜미와 날개깃 끝, 다리의 흑(黑), 나머지는 온통 백(白) 등 삼색(三色)이 뚜렷하다. 멀리서도 쉽게 관찰·발견할 수 있는 새다. 헌신은 투명하다. 불투명은 헌신적이지 못하며 악의적이다. 성직자가 입는 투명한 색상의 뚜렷함은 헌신의 징표인 셈이다. 자연생태에서 두루미는 새끼가 부화되면 한 쌍 중 반드시 한 마리는 깃갈이 즉 환우(換羽)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여우나, 족제비 등 천적으로부터 어린 새를 죽기를 각오하고 헌신적으로 보호하기위해서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천성이자 자연생태계의 섭리이다.

학을 만나므로 인해 각자의 삶이 밝아지며, 따뜻해지며, 새로워지고, 헌신을 느낀다면 이미 거룩새를 닮아가고 있다. 두루미가 거룩새이며, 거룩새가 헌신새라면 세상은 가난, 병, 전쟁이 없는 거룩한 세상이 될 것이다. 현실의 두루미와 상상의 거룩새가 공통적으로 갖는 밝음, 따뜻함, 새로움, 헌신의 실천을 학의 고장 학성에서 앞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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