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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딩크' 박항서 감독 키는 166㎝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은 키의 미드필더 박항서는 끈질긴 압박 수비로 상대를 괴롭히는 근성을 가진 선수였다. 그리 주목받는 스타도 아니었고 선수 생활도 짧았다.

그런 그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호' 일원으로 한국 대표팀을 단련시켰다. 이후 한국 U-23 대표팀과 국내 프로팀을 두루 맡으며 감독 경력을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해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깜짝 선임된 후부터 '박항서 매직'을 쏟아내며 축구 인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축구 지도자 박 감독은 숱한 질곡을 겪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직후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선 두 달만에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됐다. 올스타 멤버들로 구성된 대표팀이 동메달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타도 아니었고 메이저 대학출신도 아닌 그야말로 '비주류'였다. 감독 해임 후 외톨이 신세이던 그를 3년 후배인 프로 감독이 코치로 불렀다. 위계 질서가 엄격한 축구판에서 그는 한동안 후배의 코치로 일했다.

2005년 경남 FC 초대 감독과 2010년까지 전남 드래곤즈,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상주 상무 감독이었지만 그저 그런 성적을 내고 축구계에서 잊혀졌다. 절치부심했는지 와신상담 속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난해 9월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됐다. 반신반의하던 베트남이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겸임하도록 했다.

'박항서 매직'의 화룡점정은 올해 초 2018 AFC U-23 선수권대회에서 발휘됐다. 조별리그에서 한국, 호주, 시리아와 같은 조가 된 베트남은 최약체로 평가받았지만 사상 첫 준우승을 해 '박항서 매직' 열풍 속에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지금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 축구 선장 박항서와 울산시의 새 선장이 된 송철호! 두 사람은 숱한 실패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업계에서 성공 신화를 남기진 못했지만 지금 최고의 수장이 되었다. 베트남 축구와 울산시는 위기가 바닥일 때 박 감독과 송 시장을 각각 선택했다.

박 감독의 리더십이 울산시에 필요한 인연이거나 이유이면서 유사성이 보인다. 박 감독은 "쌀국수 대신 우유"를 주장하며 단백질 중심의 식단으로 선수들의 먹을 것부터 교체했다. 선수들에게 식사 중에는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 구성원 체질을 개선하고 필요하면 단호하게 대처하는 리더십이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는 이제 "무기력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경기를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축구를 한다. 기동력과 점유율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조직을 어떻게 운용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리더가 다잡아야 한다. 울산 행정의 방향이자 지향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박항서 감독은 몇 안되는 '육성형' 리더였다. 학연·지연 중심의 OO 라인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이 부분도 송 시장의 지난 삶과 닮았다. 박 감독의 언행은 베트남인의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인 '겸손'과도 궁합이 잘 맞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늘 지는 것에 익숙한 베트남 선수들에게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없다"고 격려했다. 송 시장도 시민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박 감독은 선수 하나하나를 찾아 다니며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부상을 치료하고, 다리 마사지를 하며 대화하고 귀 기울이며 다독일 줄 알았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형님 리더십을 발휘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또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된 뒤 낮잠을 즐기는 현지 문화를 받아들여 훈련에 그대로 적용했다.

이 정도만 해도 박 감독 같은 리더가 그립다. 모두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내로남불' '마이 웨이'를 고집하기 보다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해법을 찾는다. 그런 리더가 그런 마음으로 시민에게 다가간다면 울산은 다시 '산업수도'의 위상을 되찾고 울산은 다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팔도민의 용광로'가 될 것이다. 울산판 '말뫼의 눈물'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예견됐고 경고가 있었지만 리더가 외면했거나 대비를 못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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