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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꺾이자마자 갑자기 가을이 왔다.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들이 정말로 달콤할 것만 같아 보인다. 여름의 바다와는 또 다른 파란빛의 하늘색이 너무나 예쁘다. 좋은날 이다. 

하지만 계절이 갑자기 바뀌는 환절기 내 주위에는 늘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번 가을의 시작도 그랬다. 지인의 입원소식을 듣고 문병차 오랜만에 찾은 병원에 들어서자 이리도 아픈 사람들이 많나? 하는 생각에 아프지 않은 오늘을 감사하게 된다. 

어두운 낯빛의 환자와 지쳐 보이는 보호자... '아마도 저들은 오랜 시간 병원생활을 한 모양이지? ' 웃어 보이는 간호사와 피곤해 보이는 간호사들, 우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 병동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머리 속이 산만해 지더니 입원병동에 도착하자 병원 특유의 냄새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순간 요절한 위대한 작곡가들이 떠오른다.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천재 모차르트, 56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30대 초반 귓병의 불치를 인정하며 완전히 귀가 멀게 돼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베토벤, 31세에 생을 마감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허약했던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20대 후반부터 병약한 상태에서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우아함과 세련미를 갖추고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았던 멘델스존 또한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왜 이들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별다를 것 없던 일상적인 병원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특수한 장소처럼 느껴진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 사람들은 살기위해 병원에 오니깐 말이다. 아마도 아까 스쳐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뇌리 속에서 그냥 스쳐지지 않았나보다. 

위에서 언급했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의 가곡 중에 '괴테' 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der Erlkonig D.328-op.1>이라는 곡이 있다. 설화로 내려오는 내용을 괴테가 서사시로 표현하였는데 18세 소년 슈베르트는 그 시에 반해 이곡을 만들어냈고 위대한 걸작이 탄생했다. 이곡에는 해설자, 아픈아이, 아이를 지키려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이를 데려가려는 어둠의 마왕 이렇게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성악가 혼자 톤을 달리하며 부르니 1인 4역을 하는 셈이 된다. '어둠의 바람 가르며 급히 달리는 자 누군가?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리네./ "아가, 무엇 때문에 떠느냐?" "아버지, 마왕이 안 보여요? 검은 옷에 관을 썼는데?" "아가, 그것은 안개다."/ "예쁜 아가 이리오렴! 함께 재밌게 놀자꾸나. 예쁜 꽃이 피어 있단다. 너에게 줄 황금빛 옷"/ "아버지, 아버지, 들리잖아요. 저 마왕이 속삭이는 소리" "진정해라 아가! 낙엽이 날리는 소리다." /"네가 좋아, 예쁜 모습, 네가 싫어해도 데려가야지." "아버지, 아버지 그가 날 잡아요! 마왕이 나를 끌고 가요!" / 아버지는 두려워 급히 말을 달린다. 그의 품 안에 신음하는 아기. 그가 집에 다 왔을 때 품속의 아기는 죽었네! / 중간 부분을 생략한 가사이긴 하지만 절박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입원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 많이 좋아졌다면 웃는 지인의 얼굴과 그 옆 침대에 아흔이 넘은 정정하신 어르신과 활기차고 수다스런 보호자를 보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잠깐의 문병을 끝내고 또다시 복잡한 병원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까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살짝 얼굴에 닿는 바람과 청명한 가을의 하늘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멜로디를 들어보면 '아~' 하고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die Forelle D.550 -op.32>를 흥얼거린다. 20세 청년 이 된 슈베르트가 만든 곡이다. 맑은 시냇물에서 송어를 낚시하는 내용이지만 이 시는 독일의 시인이자 급진적 비평가였던 저널리스트 슈바르트가 강한 자유주의 사상 때문에 10년간 감옥에서 혹독한 생활을 할 때 쓴 시로 송어의 처지에 자신을 비유한글이다. 심오한 내용은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밝고 아름다운 멜로디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다. 파란하늘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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