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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 둔 이가 가을하늘을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 올 가을 코스모스가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 이곳을 떠난 이의 눈빛을 내가 자꾸만 불러내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읽은 동화 가운데 죽음을 가장 예쁘고 애틋하게 그린 작품이 '메리트 공주님'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느낀 감동과 슬픔의 정체가 무엇일까, 언젠가는 한번 끄집어 내 보려고 했는데 그 시점이 지금이 되고 말았다.
'메리트 공주님'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잘 알려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집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동화다. 린드그렌 할머니는 옛이야기 들려주듯 다정한 목소리로 무심하게 툭,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한 공주님이 살다가 죽었습니다. 죽을 때 공주님은 겨우 여덟 살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주님은 이 따뜻하고 화창한 5월의 일요일에 땅에 묻혀야 했습니다.

메리트는 작고 허름한 오두막에 살았다. 메리트는 수줍음을 많이 탔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요나스 페터라는 같은 반 남자 아이가 메리트에게 상자를 주었는데, 그 상자 안에는 메리트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탕과 반지가 들어 있었다. 메리트는 행복했고, 그 날 이후로 황홀한 얼굴로 요나스 페터를 졸졸 따라 다녔다. 하지만 요나스 페터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고, 메리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읽은 동화 속 공주와 닮았다며 '메리트 공주님!'이라고 잠시 놀려대기도 했다.
봄이 왔고, 아이들이 언덕으로 등산을 갔을 때 꼭대기에 있던 바위가 요나스 페터를 향해 굴러 내려왔다. 메리트의 연약한 몸뚱이가 바위를 멈춰 세웠다. 메리트는 요나스 페터를 보고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메리트가 자기 몸을 희생해 요나스 페터의 목숨을 구한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바위가 굴러 내려와 부딪쳤어도, 페터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임순옥 아동문학가
임순옥 아동문학가

린드그렌 할머니는 끝까지 무심하게 메리트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메리트가 땅에 묻힌 일요일에 '영혼의 고향과 안식처'를 부르며 슬퍼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난 뒤에는 요나스 페터가 발견한 새둥지를 보러 갔다.
메리트에 대한 페터의 마음과 페터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는 상황, 무엇이 메리트를 행복하게 했는지를 알고 있는 독자는 메리트의 죽음이 안타깝고 어딘가 매정하고, 마음이 서늘해지기까지 한다. 숱한 이야기를 거쳐 온 할머니에게 이것은 삶의 리얼리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리트는 자신을 황홀하게 만든, 사탕 상자를 선물한 페터를 구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객관적 진실과 한 아이의 순수한 마음 사이에 거리가 있고, 그 거리로 인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이 불편함이 삶의 진실인 것만 같아서 우리는 애틋하고 슬퍼진다.      임순옥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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