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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에 머물 수 있는 일요일이다. 이른 아침에 가을 산책을 즐기자니 고졸한 맛이 일품이다. 허기진 영혼에 살이 오르는 듯해 혼자 걸어도 미소가 번진다. 다사다난한 일상 속에 책갈피처럼 끼어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해 아끼며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자연도 샘이 나는 것일까. 심술궂은 바람 한줄기가 휙 지나간다. 여기저기 나뒹굴던 낙엽이 참새 떼같이 종종걸음을 치다가 금잔화 꽃무더기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십일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금잔화는 아직 꽃대도 건강하고 피지 못한 꽃봉오리마저 사랑스러워 계절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실은 오늘 꽃 설거지를 하려는 참이다. 십 년 전 이웃에서 금잔화 세 포기를 얻어다 심은 것이 요즘은 가을 설거지의 주요 대상이 되고 말았다. 번식력과 생명력이 대단해 해마다 나누어주고, 솎아내기를 거듭하고 있지만 산책로와 정원, 이제는 텃밭까지 금잔화 세상이다.

올해는 사과밭까지 점령하고 말았다. 사과 알은 탱자만 하지만 사과나무에 준 거름 덕에 금잔화는 계절마저 잊고 제철보다 건강하고 꽃은 향기롭고 화려하다. 얼마 전까지 금잔화 언저리를 돌며 꿀을 따던 벌도 돌아갔다.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루 이틀만 추워버리면 초췌한 몰골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만 남겨두고 설거지를 할 작정이다. 

꽃 설거지는 꽃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다. 엄동설한의 풍세 속에 낯선 거리의 남루한 방랑객이 되는 일은 꽃의 품격이나 일생에 견주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가 달아 이슬이 금방 걷혔다. 먼저 작년의 퇴비가 푹 삭아 있는 퇴비장을 말끔히 치우고 바닥을 고른다. 한 해 사이에 손가락만 한 지렁이들의 공동주택이 되어 있다. 징그럽기보다 용하게 두더지들을 피해 살아남은 녀석들이 대견해 보인다. 

퇴비장은 곧 황금빛 꽃 무덤이 될 것이다. 올 십일월의 금잔화는 유난히 싱싱하다. 먹거리와 환경이 좋은 사과밭에 터를 잡은 녀석들은 어느 대중가요의 노랫말처럼 벌써 무덤으로 가기엔 자존심 상할 정도로 아름답다. 

나는 벌과 나비도 떠났지 않았느냐며 슬그머니 부아를 돋우어가며 꽃 무더기를 모아 더미를 만든다. 사실 개화시기엔 벌통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구별이 어려울 만큼 벌 세상이라 나다니기에도 불편할 지경의 공간이지 않았던가.

요즘은 사람도 잘 늙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균 수명도 수십 년 더 늘었다.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더 오래 살 수 있는 약품과 의술, 좋은 식품과 생활방식을 연구하며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내 잣대로 꽃들의 장례식을 치르려고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니며 하직 인사를 나누는 일은 이율배반적인 심사기는 하다.

꽃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인 몇 해 전까지는 그야말로 풍장風葬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의 바람을 두고 사람들은 여섯 걸음 앞으로 나가면 다섯 걸음 뒤로 간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십일월이 오기도 전에 마른 꽃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년간 손쓸 새도 없이 황망한 이별을 했는데, 기후 변화와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바뀌어 이제 꽃 설거지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대개의 무덤은 이별의 슬픔과 어느 정도의 체념이 서려 있다. 그러나 꽃 설거지로 만든 꽃 무덤은 화사하고 향기로우며 봄을 기대할 수 있다. 눈 덮인 깊은 겨울에도 그 앞에 서면 백설의 돔 위로 금잔화의 황금빛 기운은 해자를 이루었다. 죽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살아서야 그 공덕을 말해 무엇 하랴. 가만히 이웃을 불러 화안(和顔)의 지혜를 전하고 말 못하는 뭇 생명의 안식처와 먹거리를 끊임없이 주었으며 사랑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긴 겨울을 준비하느라 쌀쌀한 늦가을까지 궁둥이만 드러낸 채 꽃 속에 박혀 있는 벌도 기꺼이 품었다. 하룻밤의 뭇 서리에 끝장날 운명에도 순응의 방식밖에 모르는 꽃. 이름만 들어도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생명.

생명의 본질이 생로병사의 여정인데, 꽃이라고 하여 그 한 생이 사람과 다를까. 나는 그들이 겪는 갈등의 그늘도 보았다. 주변의 힘에 밀려 가늘어진 줄기에 한 모금의 물이 아쉬워 목이 타는 날도 있었다. 지나가던 소나기마저 덩치 큰 녀석의 것이 되어버리는 억울한 날도 보았다. 그러나 나름의 궁량으로 한 생을 기꺼이 살아낸 그의 겸손과 성실은 주검에서도 향기가 나는 꽃 무덤의 주인이 되게 했다. 

곧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마저 밀어내고 싶은 묵상의 계절이 온다. 나 스스로 추수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 하나 없이 한 해의 끝자락에 닿았다. 그렇지만 꽃들의 장례를 치르고 추모할 수 있는 꽃 무덤을 만든 것은 꼽고 싶다. 내 허물이 발광하는 날, 눈 덮인 꽃 무덤 앞에 서보리라. 

동안거가 어찌 선승의 몫이기만 하겠는가. 엄동설한에 깊은 기도를 올리듯 속 설거지를 하면 나에게도 향기가 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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