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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이라는 화두는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인류의 고민거리였다.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인 온난화 문제 역시 20세기 개발과 보존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 문제는 개발의 당위성과 보존의 가치에 있다. 글의 첫 문장이 무거운 것은 바로 영남알프스 산악케이블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18년을 끌어온 산악케이블카는 지난해 극적으로 가시화 되는 듯했다. 하지만 민선 7기가 시작되고, 한다 안 한다를 오가던 이야기가 이제는 안 하는 쪽으로 굳어가는 모양새다. 원전이 그랬고 시립미술관이 그랬듯 이 문제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게 어떻겠냐고 누군가 이야기 했지만 이러다간 암각화 보존이나 해상풍력, 폐기물까지 모든 문제를 공론화해야하는 상황이 올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케이블카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졌는지 지난 18년 시간을 되짚어 보자. 

핵심은 개발과 보존의 충돌이다. 케이블카를 놓는 순간 천혜의 비경과 자연의 보고가 숨쉬는 영남알프스는 훼손과 파괴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쪽과 천만에 말씀이라는 쪽이 18년을 삿대질했다. 쭉쭉 뻗은 팔이 아프고 지치기도 할만한데 아직도 양쪽은 특수시술을 했는지 여전히 팔팔해 보인다. 

일본의 북알프스로 유명한 도야마현을 비롯해 동해에 접하는 니가타·이시카와·후쿠이 현을 잇는 북알프스는 연간 관괭객이 수백만에 이르는 일본의 대표적인 산악관광지다. 설경이 동해와 이어진 절경은 말이 필요없지만 이국적인 풍광과 더불어 오랫동안 전승된 전통 문화들도 알찬 관광 콘텐츠다. 

일본 북알프스는 세계적으로도 눈이 많은 지역이다. 히다산맥에서 도야마현과 나가노현을 잇는 산악관광루트가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이다. 양옆에 거대한 설벽을 두고 걷는 길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해발 1,000m의 비조다이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7분 만에 겨울의 비경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이 곳의 케이블카는 공중에 매달려 가지 않고 지상에 설치된 철도를 따라 끌어 올리는 방식이다. 비조다이라에서 다시 고원버스로 갈아타고 해발 1,930m의 미다가하라로 이동하는 관광코스는 눈옷을 입은 수령 수백년의 삼나무와 너도밤나무를 만날 수 있는 가슴 벅찬 코스다. 

북알프스가 울산에 위치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공중을 연결하는 케이블도 안되는 판에 궤도를 깔아 케이블을 밀어 올리는 대공사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환경파괴자로 낙인찍힐 게 뻔하다. 

어디 그뿐인가. 산 허리에 관광버스가 달리는 길을 만들자고 하면 이건 아예 정신나간 인사로 치부돼 지역에서 문제의 인물로 찍힐 게 분명하다. 일본의 북알프스 일대는 경관은 물론 중산간부에는 습지가 형성돼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즐비한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훼손과 파괴의 상징인 케이블카와 고산버스를 만들어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울산의 경우 케이블카를 두고 18년 세월동안 수많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영남알프스에 다시 케이블카를 할 것처럼 이야기 했던 울산시는 내년도 예산에서 케이블카 설치보조사업비 2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시의회에서 한 의원은 "시장이나 군수가 바뀔 때마다, 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지난 18년 동안 오락가락하다가 사업을 그렇게 쉽게 중단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며 "사업에 기대를 건 울주군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기고 행정 불신을 자초한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시는 당장 내년부터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해 예산을 삭감했다고 해명하면서도 행복케이블카 대안 노선을 검토하겠다는 것이지,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라고 전면 백지화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비난 여론을 비켜갔다.

영남알프스 케이블카 문제에서 핵심은 훼손이다. 환경평가에서 산악케이블카 통과 지역에 멸종위기 2급인 '구름병아리난초' 자생지를 비롯해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삵, 여우, 담비, 수달, 벌매, 참매, 구렁이, 남생이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폭넓게 서식해 있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멸종위기 동식물이 폭넓게 서식해 있다는 사실과 케이블카 설치로 이들 생물군이 멸종한다는 문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로프웨이라는 케이블카 공사의 특성상 지표면의 훼손은 최소화 할 수 있기에 자연물과 인공물은 충분히 공존 가능하다는 결론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환경부의 자연공원법에 따른 공원계획변경, 환경영향평가, 문화재 현상변경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 많은 곳에서 보존과 훼손의 논란은 있었고 수많은 연구와 자료조사도 있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케이블카가 경관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등산객들이 산을 밟고 지나가면서 생기는 압력이 등산로와 등산로 주변을 훼손하는 정도가 심각하다는 조사도 나와 있다. 실제로 엄청난 인파가 몰라는  북한산 국립공원의 경우 74개 등산로 외에 365개의 샛길이 만들어져 사람의 접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환경 파괴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설악산 권금성 등산로는 1971년 케이블카가 들어선 뒤 등산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자연 식생을 되찾은 상황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인류 유산으로 후대에 보존해야 하는 자연물과 생물군은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자연 환경에 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사사건건 보존의 논리를 연결하는 것은  인간이 기계를 발명하고 이를 생활에 이용하는 것 자체가 자연에 대한 도전이자 훼손이 되고 만다. 케이블카를 처음 만들어 설치한 이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기 위해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기획했다면 오산이다.

케이블카는 18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생겨났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게 만들고 싶었던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실험처럼 시작한 사업이 100년을 넘어 명물이 됐다. 지상을 달리는 열차를 케이블로 연결한 관광기구가 첫 케이블카였던 셈이다. 

그 이후 이같은 모양의 케이블카는 세계 곳곳에 설치됐고 산악지형에서는 탑을  세워 케이블을 공중에 매다는 공중 케이블카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삭도라는 이름으로 1962년 서울 남산에 첫 케이블카가 운전을 시작했다. 은하수와 무지개라는 이름의 두 대의 케이블카는 대단한 인기였다.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한 한국 삭도공업주식회사는 이후 부산 송도 등 전국의 명소에 케이블카를 놓았다. 지금은 전국 41개소에 143개의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다. 세계적 자연 유산인 호주 케언스국립공원의 스카이레일 케이블카는 7.5㎞ 구간에 걸쳐 35개 타워를 세워 세계인을 맞이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 설치된 약 2,600개의 케이블카는 연간 6,600만 명이 이용한다. 이 케이블카를 통해 발생하는 관광 수익이 무려 1조 원에 달한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에는 2,470개의 케이블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아래와 정상부를 연결하고 있다. 스위스 역시 케이블카로 연간 9,700억 원의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

삭도든 케이블카든 인간이 만든 이 인공구조물은 무엇보다 이동과 보행권에서 약자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노약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지금도 주말이면 영남알프스를 오르는 등산로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119 구조대의 숨가쁜 사이렌은 어떻게 하든 한번은 산 위에서 비경을 보고 싶은 보행 약자들의 조난신호다. 

여전히 수많은 이동권의 약자들은 언젠가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영남알프스는 물론 금강산과 백두산 천지에 올라 대자연의 공기와 만날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산다. 그들도 가능한 높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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