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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는 풀을 지우고, 외할아버지는 토끼를 지우고
시골 외갓집 앞마당에는 나무와 철망으로 만들어진 토끼집이 있어요. 늙은 감나무가 자꾸만 이파리를 떨어뜨려, 토끼집은 감잎 지붕을 갖게 되었어요. 토끼집에는 하얀 토끼 한 마리와 하얀 토끼의 그림자 같은 갈색 토끼 한 마리가 살았어요. 외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이슬이 날아간 풀을 토끼에게 주었어요. 눈이 홍시처럼 빨간 토끼들이 쓱싹쓱싹 두 개의 토끼지우개처럼 풀을 지웠어요. 바닥엔 까만 지우개똥만 가득했지요. 이놈들은 겨울이면 두 배로 클 거야. 외할아버지가 말했어요. 그리고 다음 여름방학, 외갓집에 갔을 땐, 얼룩 토끼와 얼룩 토끼의 그림자 같은 까만 토끼가 있었어요. 어, 하얀 토끼와 갈색 토끼는 어디 갔어요? 아, 그놈들 할아버지가 ●●●●단다. 이 녀석들도 겨울이면 두 배로 클 거다. 하하하. 이가 두 개 남은 외할아버지, 아니 외할아버지지우개가 말했어요.

송현섭 작가를 이 동시집으로 처음 만났어요. 직접 만난 건 아니구요. 동시로 만난 거지요. 이렇게 능청스럽게 할아버지와 시골집을 표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시골 외갓집의 풍경 속에 들어온 토끼집, 그 집을 배경으로 일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됩니다. "이 녀석들도 겨울이면 두 배로 클 거다. 하하하" 이가 두 개 남은 외할아버지지우개의 말과 함께 환히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동시랍니다. 작가의 관찰력과 그것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누가 봐도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집을 보자마자 착한 마녀는 어떻게 일기를 쓸까 궁금했었거든요.

# 푸른 전봇대

멀리서 보면
소시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푸른 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봇대야.

넝쿨 잎들이
오물오물 삼켜 버렸지.

이제 넝쿨 잎들은
찌릿찌릿
전기를 먹으며 자랄 거고
전기뱀장어처럼
무서운 무기도 만들 거야.

말하자면
우리 마을에, 나 말고
새로운 괴물이
하나 더 추가된 거지.

 

아동문학가 장경숙
아동문학가 장경숙

새로운 괴물 같은 송현섭 작가의 동시집에는 사물과 현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동시 44편이 담겨 있습니다. 동시집을 읽으면 자연스레 작가가 만든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갈 테고, 그 길을 따라 상상의 나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겁니다. 누구라도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송현섭 작가와 함께 착한 마녀가 사는 나라로 여행 한 번 떠나보시길 바랍니다.  아동문학가 장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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