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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겸 국장

지난 2017년 독립 100년을 맞은 북유럽 호수의 나라 핀란드는 전 국민들에게 엄청난 선물을 했다. 20년 전, 독립 100년을 내다보고 기초를 쌓기 시작한 국립도서관이 선물이었다. 

'오디 도서관'이라 이름 지은 이 국립도서관은 무려 20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핀란드인의 선물이 됐다. 공공 도서관 예산을 대폭 삭감한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이 핀란드의 사례를 전면에 내세우며 도서관 예산 증액을 정부에 촉구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도서관에 투자하는 비용을 더 늘려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러시아의 오랜 식민통치를 견딘 나라, 고개만 돌리면 빙하가 만든 호수가 구름처럼 펼쳐진 나라, 유난히 동양적인 생김새가 유전인자로 흐르는 나라 핀란드는 말 그대로 도서관 나라다. 전체 인구 550만 명이 한 해 동안 도서관을 5,000만 번 넘게 방문했고 독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새로운 도서관을 짓는 나라다. 

놀라운 것은 국립도서관을 새로 지었다는데 이미 도서관 숫자는 세계 1위다. 울산의 작은 도서관보다 규모가 작은 곳도 많다. 책이 많이 갖춰지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도시든 마을이든 동네 한쪽이든 도서관에는 주민들의 출입이 빈번하다. 꼭 책을 보기위해 오는 것도 아니다. 시장가다 들리고 점심시간에 잠시 들려 앉았다 가기도 한다.

도시의 최적지, 시민들이 가장 오기 편한 곳에 도서관이 있다.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공공도서관에 몰려온다.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도서관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근사한 공원에 자리한 시립도서관이나 국립도서관은 아침부터 줄 서야 들어갈 수 있다. 550만 명의 인구에 도서관 숫자가 780개, 7,000명에 하나의 도서관을 가진 나라가 핀란드다. 

울산시가 지난 주말 보도자료를 하나 내놨다. 올해의 시정 1위를 선정했는데 울산시립도서관 개관이란다. 울산시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5일까지 시민, 시·구·군 의원, 출입 기자, 공무원 등 1,5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올해 시정 베스트 5'를 선정했다. 

1위가 울산도서관 개관이다. 부연 설명으로 울산도서관을 홍보했다. 지난 2015년 착공해 올해 준공했고, 개관 후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복합 교육·문화의 장이자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해 최고의 시정으로 평가받았다는 문장이었다. 

인정할 만하다. 공업센터 반세기 동안 시립도서관 하나 갖지 못하다가 제대로 지은 도서관이니 자랑거리다. 더구나 잘 지은 건물이 여러 군데에서 빼어난 외관으로 상을 받았고 벤치마킹하러 다른 지자체에서 방문까지 한다니 놀랍다. 

지난 봄 문을 열자마자 30, 40대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주말은 물론 평일까지 방문객이 몰려들었으니 시정 1위를 할 만한 장소다.

그런데 과연 울산도서관이 시정 1위라고 자랑할 만한 곳인가. 인테리어 미끈하게 해두고 날렵하고도 단아하게 자리한 외관을 갖췄다고 울산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말 많고 탈 많던 시설이지만 문 열자마자 물어물어 찾아간 시민들의 행렬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 공공시설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간절히 기다린 시설과 제대로 만든 시설은 다른 이야기다. 도서관은 지식정보의 시장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축적해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 개방성을 중시한다. 특히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도서관을 그 도시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최근에 지은 세종시의 국립도서관이 세계 10위의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황량한 세종시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을 지은 것은 미래를 내다본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 도서관의 자랑은 총 면적 307만㎡의 중앙녹지공간과 호수면적 32만㎡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세종호수공원 바로 옆에 자리했다는 점이다. 세종으로 이주를 꺼리던 많은 공공기관 직원 가족이나 공무원 가족들은 세종에 있는 바로 이 도서관과 공원을 둘러보고는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과장은 아닌듯하다. 

공공도서관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한 곳은 서울도서관이다. 서울의 도서관이라면 남산에 솟아 있는 도서관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서울은 시립도서관만 18개가 넘는다. 특히 서울시청 옆에 자리한 서울도서관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친화형 도서관으로 이름이 높다. 시청 인근에 시립도서관을 짓는 것은 바로 시청이 시민들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미 체험했겠지만 맨해튼의 중심에서 만나는 뉴요커들의 독서삼매경은 이채롭다. 바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브라이언트 파크 곳곳에 자리한 책벌레들은 다름 아닌 공원 옆 시립도서관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울산도 물론 시립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공공도서관과 작은 도서관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우리도 엄연히 도서관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울산의 대표도서관은 자랑할 만한 곳이 아니다. 시정 1위라 홍보하는 울산시립도서관은 시민 옆에 있지 않다. 박맹우 시장 시절 예산절감을 이유로 석유화학공단과 시가지의 경계지점인 여천위생처리장 부지에 자리를 정했다.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있는 울산사람 몇몇이 장소를 바꿔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3선 시장이 자신의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자신이 출마할 지역구에 도서관 건립을 결정해버렸다. 시장직을 이어받은 다음 시장은 전임 시장의 전횡을 들여다보겠다며 몇 가지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시립도서관은 모른 체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제1의 부자도시라고 하지만 정신의 황폐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오물을 처리하던 곳에 시립도서관을 지어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천박한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도서관이 도시의 심장이 되고 도시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울산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곳곳의 사람이 모여 오늘을 만든 도시다. 먹고 살기 위해 찾은 곳이 울산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서 그들이 울산의 주인이 됐다. 한 때 뜨내기 도시라했고 공해백화점이라 불렸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울산을 뜨내기 도시니, 공해백화점이니 따위로 비하하지 못한다. 

반세기 전 울산을 찾아 온 이들과 그들의 2세들은 울산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보고 듣고 체험했으니 누구보다 울산을 잘 안다. 그래서 바로 이들은 타지에 나가는 순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울산의 홍보대사가 된다. 바로 그들이 그들의 자식들과 손잡고 찾아가는 곳이 시립도서관이다. 

울산과 도시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은 소도시 경주에도, 김해조차도 자신들의 랜드마크로 시립도서관에 정성을 들인다. 울산은 그저 예산이 1순위다. 어디에 짓든 도서관이면 되는거 아니냐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도서관을 짓고 도서관 업무를 보고 있다. 

울산도서관은 입지 선정 때부터 공해지역 최악의 장소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울산시는 공해 저감대책 등을 발표하며 쾌적한 시립도서관을 목표로 건립을 강행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문제는 심각하다. 

외관은 번듯하고 내부도 깔끔하지만 주변은 황폐하다. 인근 공단에서는 최근 2년간 화학공장이 잇따라 신설되거나 증설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해공장을 머리위에 이고 있다. 공단과 직선거리로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입지적 한계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도서관 하늘 위에 떠 다니는 오염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황산화물(SOx), 대기오염물질인 탄화수소(THC), 질소산화물(NOx), 휘발성유기화합물(VOC) 등이다. 

그런데도 울산시는 "시립도서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인근보다 악취의 영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악취 원인 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만큼 악취에 대한 우려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부끄럽고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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