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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 기도가 끝나고 회향하는 날이었다. 법회를 마친 스님이 깜짝 선물을 내어놓았다. 자녀들이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면서 벽조목으로 새긴 부적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 수보다 턱없이 모자라는 부적을 받기 위해 신도들이 올챙이 떼처럼 몰려들었다. 나 또한 뒤질세라 줄을 섰지만, 천손을 연상케 하는 팔들 사이에 밀려 행운의 부적은 그림에 떡으로 남았다. 먼저 선 사람들이 몇 개씩 챙기는 동안, 뒤에 선 사람은 틈을 비집고 다가설 수가 없었다. 

본래 계획에 없던 깜짝 선물 앞에서, 막상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았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견물생심이기로서니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기도 전에 이 무슨 욕심인지 모르겠다. 인연이 아니어서 나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인데 자식이란 말 앞에 또 한 번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난생처음으로 부적의 힘을 빌린 적이 있었다. 밤낮없이 우는 아기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할 때였다. 목욕을 시키고, 수유해도, 아기의 까닭 모를 울음은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를 안고 같이 우는 날이 많았다. 

잠이 부족한 남편의 눈은 항상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 단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동지섣달 겨울밤이면 집 가까운 지하도에서 바람을 피하기도하고, 여름밤이면 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아기를 달랬다. 

겨우 잠이 들었는가 싶어 자리에 눕히면 울음이 또 터졌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숨이 넘어갈 듯 울어 어떨 때는 바늘에 찔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불이며 옷을 몽땅 새것으로 갈아입히기도 했다. 

어머님은 칠마다 떡과 삼색 나물을 차려 놓고 삼신할머니에게 비손하셨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외 굵듯이 달 굵듯이 자라도록 도와주이소" 어디 그뿐이랴, 울음이 유독 심한 날은 부엌칼을 바가지 물에다 씻은 후 대문을 향해 던지는 묘기를 보였다. 어머님만이 지닌 비장의 무기로 객귀를 물리쳤지만, 그조차 효험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그동안 삼신할미에게 치성으로 빌어도 정성이 닿지 않으니 점술인에게 매달려보자는 심정이었다. 점괘는 부녀간에 합이 맞지 않아 그런 거라면서 부적 두 장을 써 주었다. 하나는 남편 베개에 넣고 또 하나는 아기의 좁쌀 베개에 넣으라고 일렀다. 잠시 좋아지는가 싶더니 울음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간절한 마음에 부적을 빼내지 못했다. 

부적에는 묘한 마력이 숨어 있다. 받은 사람이나 써 준 사람이 손해 보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효험이 있으면 당연히 부적 덕분이라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부적 덕분에 더 큰 화를 모면했다고 여긴다. 유효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가의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초에 부족했던 부적을 며칠 뒤에 다시 돌렸다. 일 년이 무탈할 거라는 스님의 말씀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부적을 베고 자란 아이라 그런지 힘에 부친 일이 생길 때마다 어디엔가 의지하고 싶어 했다. 입시 공부할 때나 취업 걱정을 앞두고는 툭하면 "엄마도 다른 친구 엄마들처럼 예수님이나 부처님한테 매달려서 딸 잘 되게 도와 달라고 해봐" 하고 떼쓰던 아이였다. 

체면도 섰겠다 집으로 오자말자 보란 듯이 아이 앞에 부적을 꺼내 보였다. 어라,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반응이 시큰둥했다. "달나라 가는 세상에 무슨 부적이야" 관심 없는 태도에 질세라, 스님께서 직접 새겨준 부적이라며 반강제로 아이 지갑에 밀어 넣었다. 마지못해 받아든 아이를 보니 부질없는 집착에 얽매인 것 같아 괜히 마음만 어수선해졌다. 

작은 부적 하나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요, 노력 없이 얻어지는 일도 없다는 건 안다. 다만, 지니고 다니는 부적으로 심신의 안정을 얻고 뜻한 바에 전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효험은 충분하지 않을까. 부적의 기가 아이의 마음에 닿아 무탈한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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