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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 속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생겨나며 어떻게 그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삶이 즐겁기도 하고 힘들어지기도 한다. 갈등은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자의 한자어다. 등나무는 넝쿨식물로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 반면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이처럼 서로 뒤엉켜버린 상황을 우리는 갈등이라고 본다.

부모와 아이의 갈등 역시 피할 수 없다. 평생에 걸쳐서 가장 많은 갈등의 대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침부터 시작된 갈등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지속되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회피하기가 다반사이다. 필자 또한 세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과의 갈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고 있다. 아이들이 크면서 갈등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는 착각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서로 볼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당연히 얼굴을 붉히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갈등이 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갈등의 순기능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갈등을 통해 관계가 더 신뢰로울 수 있으며, 정보의 투입과 대안을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상반된 의견의 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민주적인 참여를 활성화 한다. 하지만 이는 갈등이 원만히 해소되었을 경우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혜롭게 아이와의 갈등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일까? 우선은 아이의 요구와 욕구를 잘 헤아릴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자기계발과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Dale Breckenridge Carnegie, 1888~1955년)는 요구와 욕구의 의미에 대해 쉽게 얘기하고 있다. 낚시터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불만인 사람의 낚싯대를 보니 지렁이가 아닌 초콜릿을 미끼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렁이 대신 초콜릿을 미끼로 쓰고 있는 그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가? 그런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요구라는 것은 상대방이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욕구는 요구의 내면의 숨어있는 근본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목이 말라 콜라를 요구한다고 치자. 단지 "콜라가 없다"고만 답하면, 상대방은 요구와 욕구를 모두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콜라는 없지만 시원한 생수나 사이다가 목마를 때는 더 좋지"라고 얘기하는 것은 상대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결국 갈증이라는 욕구가 해결됨으로써 더 이상의 요구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필자 역시 중학교 3학년인 막내 아이의 진로를 두고 한동안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남편이 아이를 위해 축구 코치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이는 코치님의 진지한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날로 운동은 취미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너무나 쉽게 본인의 진로를 수정한 아이의 반응에서 우리는 서운함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얽히고 설힌 칡나무와 등나무 같은 갈등 상황을 부모와 아이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아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찌 보면 요구는 가짜이고 욕구가 진짜다. 즉 다양한 요구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봐야한다.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물론 그 눈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다. 아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속에서 자라난다.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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