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의 등대기행] 소망과 낭만 품은 미래의 바다-울산 간절곶등대
[이지원의 등대기행] 소망과 낭만 품은 미래의 바다-울산 간절곶등대
  • 울산신문
  • 승인 2019.01.23 17:19
  • 기사입력 2019.01.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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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수필가

기해년 첫 날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 사람들은 전날부터 새벽까지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간절곶으로 갔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바다를 향해 서서 해를 기다리고 있다. 2019년 1월 1일 오전 7시 32분,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둥싯 해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저마다 소망을 담아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오후에 찾은 간절곶, 해맞이 인파가 빠져나가 호젓할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맑고 따뜻한 날씨에 바람도 잠잠하다. 동해바다는 수평선을 선명하게 긋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등대가 있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새해 첫 날을 이곳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간절곶 앞바다
간절곶 앞바다

#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2019년 '1월의 등대'로 선정된 간절곶등대는 가족과 연인들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해 볼거리도 풍성해지고 전시관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해놓았다. 등대여권을 받고 틈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등대스탬프투어' 열다섯 군데 중 내가 사는 울산에 두 곳이 포함돼 있었는데 울기등대와 간절곶등대다. 두 곳의 등대는 등대공원으로 조성돼 지역민과 타 지역 사람들도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바다를 보기 위해 간절곶을 찾았다면 요즘은 등대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등대투어를 하면서 등대에 무한 애정이 생긴 까닭이다. 

간절곶등대가 처음 불을 밝힌 날은 1920년 3월 1일로 연대를 보면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등대는 바닷길을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제국의 불빛, 침략의 불빛'이 되기도 했었다. 오늘날 평화로운 시기에 보는 낭만적인 등대만은 아니었다. 

동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등대는 야트막한 구릉 위에 우뚝 서 있는데 새천년을 맞아 새로 건립된 신 등대다. 구 등탑은 등대 앞 잔디밭에 전시돼 있다. 등탑의 계단을 오르면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시 낭송이 흘러나온다. 감성을 자극하는 시어(詩語)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드넓은 바다를 눈에 담으면 절로 행복한 마음이 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갑하고 답답한 살이의 고단함도 잠시나마 사라진다. 온통 흰빛인 등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배를 타고 오랫동안 항해 중인 멋진 제복의 선장이 떠오른다. 한없이 고독하면서도 어떤 풍랑에도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바다사나이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등대를 보면 저 너머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마저 생긴다.
 

포르투칼 호카곶탑 조형물
로도스섬의 청동상

# 일제시기 건설돼 아픈 역사 간직
구 등탑 바로 옆에는 안개 낀 날 불빛 대신 소리로 위치를 알려주는 무신호기가  있어 눈길을 끈다. 높은음자리표 무신호기는 맑은 날에는 할 일이 없지만 음파표지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등대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빛을 이용하는 광파표지와 소리를 이용하는 음파표지, 모양이나 색을 이용하는 형상표지 등이다.

등대와 구 등탑 사이에 특별한 조형물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섬의 청동상'이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양 다리를 벌리고 오른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기원전 303~291년 로도스섬 항구에 세워졌다. 다리 사이로 배가 지나다녔다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며 등대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기도 한다. 

등대가 자리한 간절곶은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확 트인 바다로 넓은 시야 확보가 가능했기에 예로부터 동해남부지역을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새 역할을 해왔다. 반대로 동해를 건넌 왜구가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했다. 

지리적 위치의 특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울산으로 쳐들어와 간절곶 입구에 서생포 왜성을 축조(1593년) 했다. 서생포 왜성은 회야강과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원래 조선 수군의 만호진성이 있던 곳인데 임란 발발 직후, 왜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서생포 왜성은 일본에서도 축성 명수로 유명한 가토 기요마사(加騰淸正)가 1593년에 세웠다. 축성 과정에서 인근의 조선 백성들이 동원됨은 물론 서생포 만호진성이 헐려 그 돌들이 왜성을 축조하는데 사용되었다.

현재는 과거 위에서 자라며 현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것 하나 뿌리 없이 불쑥 나타나지는 않는다. 지금은 아름다운 등대공원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지만 간절곶이 겪어낸 세월 속에는 아리고 시린 역사의 시간이 점철돼 녹아 있다. 앞으로의 시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등대 앞에서 든 생각이다.     
 

포르투칼 호카곶탑 조형물
포르투칼 호카곶탑 조형물

# 등대공원 재단장 관광명소로 사랑받아
등대 아래 바닷가에 전에 없던 조형물이 있다. 세계적인 해넘이 명소로 알려진 호카곶에 있는 탑이 실물 그대로 세워졌다. 호카곶은 유라시아 최서단 이베리아 반도인 포르투갈에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간절곶과 유럽 최서단 해가 가장 늦게 지는 호카곶, 시작과 마침, 알파와 오메가처럼 무척 상징적이다. 

호카곶 탑 주변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들은 이곳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보고 유럽 호카곶에서 해넘이를 보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토는 좁지만 우리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산다. 청년들이 무한대의 가능성이 펼쳐진 바다로 시선을 돌려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참 좋겠다. 그런 패기 있는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새해 첫 날, 동해바다 수평선은 더없이 선명하고 등대는 여전히 꿋꿋하다. 우리는 파도와 안개 잦은 세상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올해도 살아가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새해의 수평선처럼 선명하고 기분 좋은 날들이 많이 이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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