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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혁이 의원정수 확대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의석수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의원 수를 늘리는 대신 국회 예산 동결, 특권 축소 등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곁들여지고 있다. 국민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상당수 국민은 지금 의원 수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줄이라 요구한다. 올초 발표된 한 방송사 여론조사 결과 50%가 넘는 응답자가 국회 의석수를 현재 300석보다 더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유지 응답까지 포함하면 80% 이상이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했다. 이런 여론에 애써 눈감으며 세비 동결, 특권 축소 등을 거론하며 의원정수 확대 주장을 이어나가려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현행 선거제는 개혁이 필요한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의원정수 확대 주장은 정당 득표율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선거제를 개혁하려다 보니 비례대표 수가 늘어야 하며, 이는 정수 확대 없이는 사실상 어렵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비례대표 확대가 필요하다면 그만큼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면 된다. 2015년 중앙선관위가 내놓은 안도 지역구는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늘려, 총 의석은 현행 300석으로 유지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었다.

정수 확대론은 이 방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데 기인한다. 지역구 의원의 반대로 지역구(253석) 축소는 어림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법 41조는 '의원 수는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굳이 200명 이상이라 한 것은 200명 대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으로 해석됐고, 이에 따라 299명으로 의원정수가 오래 유지됐다. 그런데 세종시 신설을 이유로 19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부칙조항으로 1명을 증원한 뒤 300명이 됐다.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어렵게 열었으니, 10%든 20%든 더 늘리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인가.

국회의원 수가 줄어든 때도 있었다. 금융위기 이후 16대 총선을 앞두고 299명이던 의원 수가 273명으로 줄어든 적이 있었다. 물론 4년 뒤 다시 이런저런 명분으로 299명으로 원상복귀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 한때나마 그렇게 줄인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만일 그때 정치권 분위기가 지금 같았다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의원 수가 정치 개혁의 본질은 아니지만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정치권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원들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같이 서 있음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도모할 때는 선후가 있다. 정치권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특권 폐지 얘기만 나오면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의원 모습이 거론되는 것은 우리와 큰 대비가 되기 때문이다. 없어져야 할 못된 특권 의식은 이제 지방의회에서마저 종종 목격되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외국 연수 중 벌어진 예천군 의원의 가이드 폭행 사건도 몸에 밴 특권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정치권은 의원정수 확대는 없다는 점에 우선 의견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선거제 개혁 방안을 진지하게 찾아야 한다. 현행 선거제에 문제가 많다면 지역구 의석을 못 줄일 이유가 없다. 최근 국회 내에서 선거제 개혁을 위해 구체적으로 지역구 축소 방안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을 주목한다.

비례대표 증원을 논의한다면 현행 비례대표제의 개선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썩은내 나는 공천 헌금은 없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은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의원 배지를 단 날부터 다음 총선 지역구 출마만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도 있다. 의원정수 확대 논의는 이쯤에서 접어달라. 비례대표를 늘리겠다면 지역구를 축소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선거제 개혁 반대, 반정치 광풍으로 매도하지도 말아달라.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갑질 의원이 단 한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열 명은커녕 한 명의 의원도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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