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와 예단의 간극
예지와 예단의 간극
  • 울산신문
  • 2019.01.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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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인·평론가

세모의 아쉬움과 새해맞이로 새콤달콤 부풀던 거품이 빠듯한 일상으로 잦아들고 보니 문득 세이레가 지나 있다. 지인 중 한 분은 새해 벽두엔 으레 신수를 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잘 맞지도 않는데 왜 자꾸 가시냐니까 자신이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들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좋은 것은 그렇게 되도록 좀 더 노력하고, 나쁜 것은 미리 알았으니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안 되도록 애쓰면 되지 않겠냐고 한다. 매사에 낙관론적 지혜로 사는 태도다. 그래 그런지 그분은 늘 웃는 얼굴이다. 평소 표정이 딱딱하단 말을 자주 듣는 나는 그게 부러워 은근슬쩍 그 태도와 얼굴을 화장실 거울 앞에서 흉낼 내보곤 한다. 

대개가 그렇듯 나 또한 작심삼일일망정 연초마다 앞날을 내다보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운다. 허나 벌써 또 삐끗거린다. 할 수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욕심이 앞섰나 싶다. 지금에 가만 따져보니 앞날은 냉정한 자기분석 없이 내다보았으며, 할 수 있을 거란 근거는 너무 막연했고, 일상의 자잘한 노력은 간과한 채 달콤하고 무책임한 욕심에만 휘둘린 것이다. 앞서의 지인이 늘 웃는 삶을 살 수 있는 이면에는 그 노력이란 무쇠 반석 때문임을 놓친 결과다.

흔히 현실을 냉철하게 판별하는 힘을 이성이라 한다. 이 이성적 판단의 핵심 중 일부에는 논리와 논증이 들어간다. 일반적 사실이나 원리를 전제로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를 결론으로 이끌어 내어 설명하는 연역추론과 그 반대인 귀납추론은 대표적 예가 된다. 여기서 우리네 반복되는 일상적 경험과 밀접한 것은 귀납추론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거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혹은 "가을무 뿌리가 길면 겨울이 춥다"는 속담이 있다. 특히 세 번째의 경우를 살펴보면, 가을무 뿌리가 땅 윗부분에 비해 길 때는 기온이 예년보다 낮은 해로서 그 뒤에도 추운 날씨가 이어지기 쉽다. 이처럼 이들 속담은 가장 보편적인 일상적 경험의 결과로써 얻어진 귀납적 지혜이다.

우리 삶에서 앞을 내다보는 능력인 예지는 거개가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온 귀납의 소산일 때가 많다. 결코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진 초자연적 힘이 아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기존의 생각이나 앞의 속담이 유연성을 잃고 닫혀 있거나 굳어버리는 고정관념과 예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하나' 혹은 '떡잎'을 보고 그 '하나'조차 모르거나 '열'의 열 곱절 이상을 알 수도 있고, '재능'은 부실한 '떡잎'이라도 어떻게 접근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하나' 혹은 '떡잎'만으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판단하다보면 팔자소관이나 운명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마니, 어리석게도 지금 내 능력으로 가능한 노력이 끼어들 틈을 제 손으로 없애 버리는 격이다. 살아가야 할 저 수많은 내일이 아무런 가치도 희망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예지는 노력이 간과되거나 부실하면 부지불식간에 지극히 폭력적이고 독단적인 단정인 예단의 마각을 드러내고 만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거 선인들의 여러 문집에는 일엽지추(一葉知秋)란 구절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일엽지추(一葉知秋)는 당나라 어느 시인이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노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BC 120년경인 한나라 초 회남왕 유안이 주도적으로 엮은 『회남자(淮南子)』에도 비슷한 구절이 보이는 걸 보면, 일엽지추의 귀납적 지혜는 고금의 선인들에게 두루 즐겨 회자되곤 하던 예지로 보인다. 사마천의 『사기』 신릉군열전에 "좌시천리 입시만리(坐視千里 立視萬里-앉아서 천 리를 보고, 서서 만 리를 내다본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역시 예지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 또한 조금만 부주의하면 예단의 어리석음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판에 빠질 소지가 다분하다.

다음은 필자가 예지(豫知)의 예로 평소 강의시간 가끔 하는 얘기다. "춘추시대 노나라 변방 영이라는 소녀가 친구들과 베를 짜다 이웃 위나라 세자가 바보라는 말을 듣고 크게 울었다. 친구들이 이유를 물었다. '아니, 위나라 세자가 바보면 그 나라 왕이 걱정할 일이지 네가 울 일은 아니잖아' 영이는 그렇지 않다며, 몇 해 전 송나라 대부 환퇴가 노나라로 도망 왔을 때, '그때 환퇴 일행이 채소밭을 짓밟고 가는 바람에 마을 농사가 다 망쳐 굶주린 일이 있었잖아. 이웃나라 분란으로 엉뚱한 우리가 피해를 보았다고!' 또한 영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했을 때, '구천이 두려워 이웃 나라들이 보물과 미인들을 월나라에 갖다 바치기도 했지. 그때 내 언니도 끌려가고, 오빠들도 다 죽었다구. 그러니 내가 위나라 세자가 바보인 게 어찌 걱정이 안 되겠니? 그가 어리석은 짓이라도 벌이면 그땐 나와 내 동생들까지 화를 당할지 모른다구!'" 고사 노영읍위다. 노나라 소녀 영이 위나라 세자의 어리석음에 자기 앞날을 예견해 슬피 운 것이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평소 하던 말에 "안광지배철(眼光紙背徹)"이 있다. 눈빛이 종이 뒤까지 꿰뚫어 본다. 즉 독서를 함에 있어 정신없이 집중하면 이해력이 깊어져 그 이면의 속뜻까지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사심 없는 노력이 담보될 때, 예지는 진정 그 본질적 가치와 기능을 다한다. 그냥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는 사람은 없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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