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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슬같이 살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나라의 주인이라도 잃은 양 슬퍼했다. 죽음의 앞두고 자신의 어떤 것도 남기지 마라며 작은 비석 하나도 사양한다던 분이었다. 

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그분이 쓴 책 한 권을 접하고 그의 행적을 쫓고 기거하는 산사가 어딘지 궁금해하며 청춘을 보냈다. 어른이 돼서도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사는 산부처를 알고 있는 양 든든해 하며 그분이 쓴 책을 모으고는 했다. 임종을 앞둔 그분께서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당부했다는 말을 듣고 세인들은 그분의 뜻에 따라 온전히 되돌려 보내드릴 줄 알았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지 십 년도 안 된 그분의 글을 모아 책을 냈다는 뉴스를 접했다. 망자는 무소유를 당부했건만 산 자는 그를 이용해 물욕을 탐했다. 뉴스를 읽고 나처럼 실망한 독자들이 많았다. 뉴스에 단 댓글은 망자에 대한 미안함과 출판인에 대한 서운함이 빽빽이 박혀 있었다. 

시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당신이 죽더라도 화장하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그 말씀은 시어머님에 의해 묵살되었다. 아버님 듣는 데서도 죽고 나면 져다 버린들 아느냐며 어머님이 싹을 잘라버리기도 했지만, 당부하던 시기보다 세월 더 지나니 매장에서 화장으로 가는 장례문화의 변화로 순서인 듯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그렇듯 내 몸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죽음 이후다. 하여 사후의 일까지 이래라저래라할 일도 아닌 듯하다. 외람되게도 무소유를 강조했던 법정 스님마저도 마지막 가는 길에 욕심을 놓지 못한 마음이 읽힌다. 

장례식은커녕 관도 짜지 말고 자신과 관련된 어떤 책도 출판하지 말라며 어찌하여 사후 일까지 염려하셨을까. 그 바람에 마지막까지도 스님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마음에 짐을 졌을 터다. 애도했던 만큼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배움 대신 오로지 착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잘 산다는 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거라 은연중에 배우며 살았기에 부활이든 윤회든, 천당이든 지옥이든 각자 믿는 대로 믿고서 살면 편하지 않을까.

그저 사는 대로 살 일이다. 인간으로서 나고 죽음은 자연에 따르는 이치다. 원한 적 없건만 세상에 나왔고 원하는 시기도 아닌 데 가야 하는 것이 인간사다. 길섶 어느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스러져가는 잡초와 다를 게 없는 것 또한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세상의 만상 중에 으뜸이라 군림하는 인간인들 미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거대한 자연 속 한 점일 뿐이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분께서 사후의 일까지 염려한 것은 행여 자신의 '무소유'가 올가미를 만든 건 아니었을까. 애당초 소유해 본 적이 없는데 무소유가 웬 말이냐며, 시멘트 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찬 기운을 막고 사는 노숙자들의 질타를 의식한 건 아닐까도 싶다. 무소유란 소유해 본 자만이 쓸 수 있는 말이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분의 초판본인 '무소유'가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다. 그분의 기를 뿜어내고 있는 글귀를 다시 더듬어보지만 산 자의 욕심이 낡아 어른거리는 듯하다. 

모르는 출판인에 대해 삿대질을 하느니 지면으로 알게 된 망자에게 탓 아닌 탓을 하며 산방 한담하듯 스님께 물어본다. '죽으면 소용될 게 무엇일까요, 사는 대로 사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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