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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만에 속초에 왔다. 먼 길이었지만 등대를 만나겠다는 마음 하나로 나는 여기까지 왔고, 등대여권에 그려진 지도를 하나씩 완성시켜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을 주체적으로 꾸려 간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부가되고 파생되는 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도 하고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속초등대.
속초등대.

# 채워가는 기쁨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던가. 등대를 찾아 가겠다고 마음먹고도 내심 갈등이 많았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나의 여건이 녹록지 않은 까닭에 여러 날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는 길을 나섰다. 혼자 길을 떠난다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그 길 위에서 나를 비춰주는 고마운 등대들과 함께 가고 있는 중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오월 하순, 속초등대를 가기 위해 동해 행 버스에 올랐다. 동해까지만 가면 동행해 줄 지인 부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뱃길로 가는 등대를 몇 차례 다녀서인지 이제 육로로 가는 길은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섯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탔지만 별로 힘들지도 않다. 동해에서 다시 두어 시간 달려 속초에 닿았다. 

속초등대는 여느 등대와 달리 외따로 있지 않다. 삶의 현장 가까이 있어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등대 바로 아래까지 횟집이 즐비하고 아파트도 보인다. 계단만 오르면 곧장 등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외로워 보이지 않는 속초등대를 만나러 발길을 옮긴다.  

계단을 오르기 전, 고개를 한껏 제켜 올려다 본 등대는 등탑만 보인다. 가파른 철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다 잠시 숨을 고른다. 뒤돌아보니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악기를 연주하듯 평온하게 들린다. 비로소 장거리 버스여행의 피로가 몰려든다. 그것도 잠시, 싱그러운 바람이 지친 몸을 다독여주고  파도의 철썩임이 기운을 북돋아준다.         

남은 계단을 오르자 눈앞에 듬직한 몸통의 등대가 위용을 드러낸다. 가까이 갈수록 등대는 압도적인 모습이다. 등대 일층에 항로표지관지소가 있고 그 앞에 동해를 배경으로 세워진 갈매기 조형물이 있다. 주변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날개를 펼친 채 날지 못하는 갈매기가 왠지 애처로워 보인다.
 

속초등대 일대 전경.
속초등대 일대 전경.

# 속초등대, 함께여서 외롭지 않아
속초등대는 우리나라 등대 중 유일하게 60년 넘은 기계식 등명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1957년 6월 8일 생이니 지금까지 만난 등대 중 가장 젊은 등대이다. 등대의 높이는 28m인데 지대가 높아서인지 훨씬 더 높고 우람해 보인다. 

속초시 영금정로에 위치한 속초등대는 '영금정 속초등대전망대'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등대 밑의 바닷가에 크고 넙적한 바위들이 깔려있는 곳을 영금정이라 일컫는데 파도가 쳐서 부딪치면 신묘한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 '영금정 해맞이 정자'에서 보는 일출과 등대전망대에서 보는 설악산 경관,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멀리 금강산 자락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자연경관이 등대와 조화를 이루어 잘 어우러지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 동해의 경치를 바라본다. 오른쪽으로는 동해가, 왼쪽으로는 설악산이 보인다. 설악의 모습을 이렇게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은 숲을 보듯 전체가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나무 하나하나의 생김이나 이파리까지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동해의 먼 바다를 보고 저 멀리 산을 보니 우리의 삶도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야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길 텐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속초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속초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길 위의 등대들
동행한 부부는 가까이에 살아도 등대에 와 볼 생각을 못했다며 좋아한다. 부부도 등대여권에 스탬프를 찍으며 기회를 만들어 여권 속의 등대를 다녀 보겠노라며 오월 햇살처럼 화사하게 웃는다. 

은퇴 후, 바닷가 근처에 터를 옮긴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 캠핑카를 타고 나가 종일 바다에서 여유시간을 즐기다가 해질녘이면 집게와 자루를 들고 해안에 버려진 쓰레기를 담아 온다고 한다. 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편하게 보내고 있으니 쓰레기 줍는 일 정도는 마땅히 해야 한단다.

바닷가의 환경을 지키는 이들 부부 역시 등대가 아닌가 싶다. 누가 책임을 지워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찾아 실천하는 성숙된 의식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고 불편한 나를 위해 기꺼이 길잡이를 자청한 부부야말로 바다를 비추는 등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 또한 작은 불빛이라도 비추는 누군가의 등대이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부부와 함께 갈매기 조형물이 있는 벤치에 앉아 고즈넉한 이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바다가 눈앞에 있고, 오월의 맑은 바람은 타성에 젖은 마음을 씻어준다. 거기다 달콤하고 고소한 믹스커피 한 잔의 행복이라니!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예까지 왔으니 묵호등대도 가보잔다.    

부드러운 햇살을 등에 지고 계단을 내려가는 부부의 뒷모습에 묵묵히, 잘 살아온 내력이 담겨 있다. 

동해의 푸른 향기를 읽으며 영금정의 파도소리를 보고 돌아가는 길, 생각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말 일이다. 나서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는 것, 느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만나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 

뒤돌아 등대를 바라본다. 늦은 오후 해를 등지고 서 있는 등대는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가고 싶은 길 머뭇대지 말고 기 죽지도 말라며 등대는 토닥토닥 내 등을 민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 제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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