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울려퍼진 애달픈 '방어진 블루스'
항구에 울려퍼진 애달픈 '방어진 블루스'
  • 울산신문
  • 2019.04.0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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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포경산업의 뿌리를 찾다] (4) 방어진의 포경업
한석근 향토사학자

전쟁 피난행렬 끝 다다른 울산서
끼니 해결위해 앞다퉈 어선 올라
깊은 밤 고요한 부두 고동소리에
사연담은 노래로 마음 달래가며
지역 포경산업 최전성기 이끌어

 

방어진항구에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노래한 '방어진 블루스' 란 슬픈 노래가 있다. 어미 잃은 새끼고래의 피눈물보다 애절한 방어진 블루스의 주인공은 6·25 동란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청년이 짝사랑의 사연을 엮어낸 노래이기에 듣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연민의 정으로 빠트리게 하는 노래이다. 

# 슬픈 사랑이야기 지역 애창곡 유행
이 노래의 주인공은 20대 중후반의 젊은 청년인데 하필이면 이루지 못할 저인망 선주의 딸을 사랑하게 되면서 밤마다 연민에 몸부림 쳐야 했다. 끝내 그 아가씨는 부모님의 완고한 고집을 꺾지 못한 채 서둘러 혼처를 정하고서 약혼하면서 이들의 한때의 사랑은 애달픔을 남긴 채 노래로 불렸다. 
 

     밤은 깊어 고요한 선창가에서
 /그 누구를 기다리나 고동이 운다
 등대산이 아롱지는 애달픈 사연 
 /오늘도 불러본다 방어진 블루스
 사랑이란 허무한 허무한 물거품이냐 
 / 눈물 젖은 넥타이를 어루만지며
 월봉사 저녁 종소리 애달피 울어 
 /오늘도 불러본다 방어진 블루스

 박남한 작사 작곡 노래
 

1960년대 방어진항의 모습.
1960년대 방어진항의 모습.

# 휴전 후 고래고기 수요 줄어 경기하락
한 때 '방어진 블루스'는 울산에서 많이 애창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시절 (1955년) 그때 '방어진 블루스' 는 방어진 청년들 사이에 많이 애창되었다. 

당시만 해도 북쪽에서 내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을 비롯한 울산의 방어진, 장생포 등지에서 포경선과 어선(고대구리, 근착선, 후리배, 미구리:잠수선) 등을 타면 밥은 굶지 않았으므로 피난민들뿐만이 아닌 젊은 청년들은 배를 많이 타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방어진 항구는 어업과 포경업의 전성기였다. 특히 포경선은 최상의 선망 대상이었다. 

# 백상건, 포경조합장 맡으며 부활 모색
피난민 청년은 포경선을 타지는 않았지만, 고기잡이 어선을 타거나 포경회사의 고래 해체장에서 잡일을 하며 지내다가 실연의 쓰라린 가슴을 추스르며 어느 날 남몰래 부산으로 떠났다는 풍문만 남겼다. 훗날 그 청년의 짝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미모의 아가씨는 방어진 중학교 선생을 맡았던 한계 선생과 결혼하여 몇 년 후 울산 모 중학으로 전근을 갔다.

1953년 치열하게 밀고 당기던 6·25동란을 미·소·중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전쟁이 일시 중단되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때 부산까지 밀린 남한 정부는 겨우 한숨을 돌리 채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피난민들이 수복하는 이승만 정권을 따라 환도했고 한결 붐비던 후방이 느슨해졌다. 

피난민들이 차츰 줄어들자 고래의 수요도 급감해 휴전 이후에는 한동안 경기가 뜸해졌다. 

# 서해 대흑산도까지 원정 출항떠나
하지만 방어진에 머물던 백상건은 내일의 부활을 꿈꾸며 장생포로 몸을 옮겨 한국포경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포경조합장을(1970년) 맡으면서 대일 수출의 문을 열었다. 이즈음 선주이던 백천건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장남이 승계하여 운영하던 청진호를 동생인 백만욱과 백만철에게 양도해 줬다. 

이들 두 동생은 낡은 청진호를 운영하였으나 너무 선령이 노후화되어 더 이상 포경을 할 수가 없어져 1960년에 목선인 정흥호를 건조해 한반도 연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포경 활동에 열을 들였다. 동해는 독도에서부터 남서해 어청도까지 원정포경을 하며 젊은 시절(20대 중반)부터 포경산업에 몸을 담았다.

백만욱(92세)의 구술에 의하면 백상건의 사위인 김정하는 수산청으로부터 특정 자금을 지원받아서 방어진 청구조선(구 방어진 철공소)에서 포경선(철선) 2척을 건조하여 출어했다. 
 

1960년대 화잠에서 미역건조 작업을 하는 모습.
1960년대 화잠에서 미역건조 작업을 하는 모습.

# 여름되면 돌아와 배 정비하며 휴식
방어진, 장생포 포경선들이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이면 서해안으로 고래잡이를 떠났다가 6~7월이면 동해안으로 돌아왔다. 서해에서는 어청도, 대흑산도까지 진출해 포경을 하였고, 밤에는 인근 항구에 정박하면서 여러 날을 조업했다. 

풍랑이 거센 날은 출어를 못 하고 무료할 때면 모래 벌에서 원주민들과 편을 갈라 씨름을 하며 유대를 다지며 시간을 보냈다. 대개 한여름철에는 잠시 포경을 멈추고 그동안 미루어온 배를 손보며 휴가를 즐겼다. 

# 수리 중 포경포  발사 아찔한 사고도
육지의 온도가 30도가 넘을 때는 바닷물은 더욱 차가워지고 뜨거운 공기와 부딧흰 해수는 해무가 짙게 발생해 지척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탐경이 되지 않으니 출어가 불가능하다.

한 번은 포경선을 수리하려고 도크에 올려놓았는데 구경꾼들이 눈을 피해 배 위에 올라가 포경포를 구경하고 만지다가 그만 방아쇠를 당겨 강력한 폭발음과 동시에 포탄이 옆집의 벽을 뚫고 날아갔다. 

마침 잠자던 이 집의 여주인은 놀라 기절하였고, 임신 중이던 여인은 유산하고 말았다. 한편 배 위에서 방아쇠를 당긴 구경꾼은 폭발음에 놀라 벌렁 뒤로 나뒹굴어 져서 그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방어진 지서에 연행되어 몇 시간 취조를 받고 우발적인 사고였음이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이외에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다고 회고하며 껄껄 웃으며 젊은 시절의 한때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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