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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박 사장'은 아들이 제대하고 난 후 스스로 붙여 준 감투 아닌 감투였다. 아들은 자신의 포부를 대신해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닉네임부터 만들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도구인 양 아는 사람들에게 날려댔다. 제대한 아들은 일부러 대학복학 시기에 맞춰 제대 날을 계산해 입대 날짜를 잡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군대서 몹쓸 물이 들어왔다며 타박도 했다. 도대체 군에서 무슨 계획을 세워 저렇게도 돈 타령을 할까 싶어 공연히 아들의 군대 생활에 궁금증과 원망이 일기도 했다. 한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 힘들 만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다. 누가 돈 벌어 오라느냐며 달래고 어르고 윽박질러도 봤다. 제 대답이야 군대씩이나 갔다 와서 돈 달라는 소리가 안 나온다고 말했지만 어느 날은 손목에 아대를, 어느 날은 무릎에 파스를 바른 게 내 눈에 띄기도 했다.

급기야 돈이 모이면 장사하겠다는 말을 했다가 남편으로부터 보따리 사서 나가란 소리까지 들어놓고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밖으로 향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별의별 수를 쓰며 복학하기를 권유해도 소용없었다. 얼마 후, 애원하듯 부탁하는 부모가 안타까웠던 건지 우여곡절 끝에 복학하고서도 여차하면 옆길로 샜다는 것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제 마음이 아닌, 부모가 시켜서하는 일을 그대로 진행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살얼음을 딛듯 녀석의 행보를 주시하던 여름방학 때였다. 느닷없이 그간 모은 돈으로 인근 바다에서 장사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남편이 벌떡 일어섰다. 옆에서 지켜보자니 처마 밑에 매달려 드센 바람에 흔들리는 호야 등불을 보듯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한 듯 아들은 그 건을 빌미 삼아 의기양양 바다로 향해 달아나 버렸다. 어미인 나마저도 남편과 같은 마음을 보태서 내쫓다시피 했다. 드센 바람의 힘으로 일렁이던 호야 등은 땅에 떨어져 대책 없는 불길로 번져 버렸다.

그해 여름은 하늘 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연일 비만 내렸다. 어쩌면 하루도 빠짐없이 비를 내려 주시던지 하느님이 야속했다. 날이 갈수록 맨몸으로 집을 나가 한뎃잠을 자는 아들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갯벌 밖으로 나와 적군을 대하는 성난 조개같이 입을 다문 남편에게 내 속을 보여 줄 엄두조차 못했다.

아들이 집을 나간 지 근 한 달이 돼 갈 즈음이었다. 자식이 이 한더위에 굶는지 마는지, 잠은 어디서 어떻게 자는지도 모르면서 부모라 할 수 있느냐고 남편을 질타했다. 잘난 자식만 자식이라 한다면 그게 무슨 부모냐고 속사포를 쏘듯 쏟아낸 말이었지만 그건 무심하게 일을 키운 나를 타박한 소리기도 했다. 

남편 앞에서 보란 듯이 지갑을 찾았다.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사서 갈 것이라며 따라오든지 말든지 하라면서도 따라나설 시간을 줬다. 못 이긴 척 따라나서는 남편과 마트에 들러 생필품과 먹거리들을 카트에 담았다. 마지못해 나선듯해도 달걀 한 판을 실으며 남편도 자식을 향한 마음을 싣고 있었다. 

형형색색 원색의 파라솔 물결이 넘실대는 바닷가를 돌며 아들을 찾을 작정을 할 것도 없이 바다 초입에 아들 모습이 보였다. 제법 가게 티가 나는 컨테이너의 매대 위에 놓인 주스기를 돌리고 있었다. 알지 못할 뭉클함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오랜만에 본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그간의 고생이 말해줬다. 불시에 찾아간 나와 남편을 본 아들이 잠시 놀라는 듯했다. 

그마저도 잠시, 유머러스한 평소 성격답게 건강한 웃음을 날리며 태연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 앞에 메뉴판을 갖다 놓으며 멋쩍게 웃었다. 덩달아 웃으며 컨테이너 안을 두리번거릴 때 내 과일 주스를 놓으면서도 아들 눈빛은 지나가는 피서객들을 따르느라 바빴다. 

남편과 나는 장사치가 다 된 녀석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서글픈 속담을 실행이라도 하듯 우리 부부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여름 이후, 아들이 자청한 고난의 시간을 시작점으로 '울산 박 사장'의 허상을 넘어 더욱 혹독한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다양한 직업으로 제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고 있다. 

청년실업자니 평생 취준생이니 하는 말이 나도는 이 불안한 시점에서 다시 아들을 바라본다. 바로 끼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코앞에 보이던 퍼즐이 달아나 엉뚱한 데서 찾아야 하는 시련이 또 닥칠지 모른다. 그때마다 긍정적 사고를 가진 아들답게 '울산 박 사장'의 꿈을 꾸던 그 당당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나 힘차게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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