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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높은음, 낮은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여유 있게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듣기가 편해서 좋은 느낌을 받는다. 목소리가 좋으면 초성(楚聲)이 좋다고 표현한다. 노봉(老峰)은 시(詩) '조전화앵'을 통해 동도 기녀 전화앵의 초성을 가선(歌扇)으로 표현했다. 

해방 후 통도사 초대 주지를 역임한 양대응(1897~1968) 스님의 딸 덕경(1930년생)은 "스님은 한량이셨어요. 특히 목소리가 좋아서 염불과 독경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경봉 스님도 양대응 스님 독경을 못 따라간다며 칭찬했어요. 얼마나 소리를 또 잘했는지 평안도 수심가는 절창이었어요. 나는 이제까지 아버지만큼 잘 부르는 수심가를 못 들었어요. 보살들도 참 좋아했어요. 심지어 평안도 기생까지 통도사에 배우러 왔어요. 그만큼 아버지가 소리를 잘했어요"라고 회고한다. 회고의 중심에는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울산예술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성악가 엄정행(嚴正行. 1943년생) 교수는 <목련화>로 우리나라 가곡 대중화의 선구자였다. 현재도 초성이 좋다.  

새 중에도 초성이 좋다는 새가 있다. 뻐꾸기다. 뻐꾸기는 우리나라를 찾는 여름 철새이다. 울음소리가 좋아서 민요 정선아리랑에도 등장한다. 

"앞산의 뻐꾸기는 초성도 좋다 세 살 때 듣던 소리 변치도 않았네" 새타령에도 등장한다. "이 산으로 가면 쑥꾹 쑥꾹, 저 산으로 가면 쑥쑥꾹 쑥꾹"에서'쑥꾹 쑥꾹, 쑥쑥꾹 쑥꾹'으로 표현된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뻐꾹새이다. 

뻐꾹새를 닮아가고자 한 국악인이 있다. 원로 국악인 김진환(1937년생) 선생은 젊은 시절 뻐꾸기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어 예명을 아예 '김뻐꾹이'로 통한다. '뻐꾹이'는 '뻐꾹, 뻐꾹'하고 울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팔도 기생 타령에 유독 서울 기생의 이름에 뻐꾸기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서울 기생이 유독 목청이 좋아 노래를 잘한다는 의미이다. 

뻐꾹새는 두견이목 두견이과의 여름철새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고 여름에 우리나라에 번식하러 온다. 뻐꾸기 하면 떠오르는 강한 느낌은 울음소리와 자기 알을 남이 키우도록 하는 탁란(托卵) 행동이다. 

뻐꾹새는 한 곳 한 나뭇가지에서 오랜 시간 머물지 않는다. 저 산으로 날아갔는가 하면, 어느새 이 산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민요의 가사처럼 뻐꾹새가 이 산, 저 산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우는 것은 뻐꾸기 입장에서 보면 자기 세력권의 순찰이며, 세력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뻐꾸기는 번식 시기에만 운다. 울음소리로 자기를 자랑하며 두드러지게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뻐꾸기 암컷은 이 산 뻐꾸기 울음소리, 저 산 뻐꾸기 울음소리를 몸을 숨겨서 듣고 있다가 수컷의 울음소리가 크고 자주 울수록 건강한 총각으로 여겨 찾아가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행동은 건강한 종족 번식을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 시작의 계절에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크며 정확해서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이유다. 뻐꾸기 문화 중 하나가 화투장에 있는 4월의 새이다. 보라색 등꽃 사이로 나는 새가 바로 뻐꾸기이다. 두견새로 보기도 한다. 뻐꾸기와 두견이는 둘 다 두견이목의 새다. 

뻐꾹새는 특이한 번식행동을 한다. 둥우리를 짓지도 아니한다.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지도 아니하며, 먹이를 물어다 키우지도 아니한다. 뱁새, 개개비 등 남의 둥우리에 몰래 알을 낳아서 그들이 기르게 한다. 이를 조류생태학에서는 탁란(托卵)이라 부른다. 이러한 행동도 자연섭리 생존전략의 일종인 셈이다. 

뻐꾸기가 이 산 저 산 옮겨가면서 높은 나무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큰 소리로 우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낳은 알을 잘 기를 수 있는 대리모를 찾고 있다는 알림이다. 

뻐꾹새의 울음소리는 농부에게는 '포곡포곡, 포포곡 포곡'으로 들린다 하여 '포곡새'라고도 부른다. 선비는 이를 한자'포곡(布穀)'으로 기록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씨 뿌려라 씨 뿌려라, 어서어서 씨 뿌려라'이다. 포곡새는 농부에게 농사철을 알리는 동네 이장 같은 새다. '아, 아 동민 여러분 모내기 시절입니다. 보리는 베고, 모를 심으세요'라는 독촉과 격려의 울음소리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뻐꾸기는 로맨틱한 분위기에도 등장하는 새이다. 난계 오영수는 단편소설<머루〉에서 호젓한 산 등에서 연인 사이인 석이를 만난 분이가 손등으로 햇살을 가리고 반듯이 누워버린다. 이후의 상상을 "골짜기에서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로 오버랩 시켰다.

올해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곡우(穀雨)와 포곡(布穀) 그리고 망종(芒種)으로 번갈아 들린다. 뻐꾸기 새끼 입속같이 붉은 영산홍이 지천으로 폈다. 싱그러운 청보리 물결을 사이에 두고  문수산에서, 무학산에서 뻐꾸기가 서로 화답한다. 

'곡우(穀雨) 포곡(布穀) 망종(芒種)∼ 곡우(穀雨) 포곡(布穀) 망종(芒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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