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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참꽃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 나를 꽃피웁니다. (봄 편지, 안도현)

다소 긴장되었던 새 학기의 기운이 스르르 풀리면서 마음의 빗장도 열리고 있는 요즘이다. 

선생님 노릇의 기쁨, 보람도 조금씩 더 느껴가고 있다. '이거 잘할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내어준 과제들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해주고 있는 기특한 우리 아이들. 이렇게 아이들이 주는 일상의 소소한 감동을 선물 받으며 함께 성장해 가고 있다. 

삼삼오오 내 자리 주변에 모여들어 서로 묻고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히려 선생님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위로해주며 기다려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관계를 맺는다. 자의든 타의든 다양하게 맺어지는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행복감을 찾는다. 학교에서도 그러하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교사와의 관계가 원만해야 아이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교사 역시 아이들과 호흡이 잘 맞고, 학부모와의 소통이 잘되며 동료 교사들이나 관리자와의 관계가 원만해야 직장 생활로서 행복하다. 종종 여러 이유로 관계가 어긋나 고충을 겪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에는 '나 자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렇기에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여는 열쇠는 결국 자신에게 있다. 

내 마음에 조금 덜 차고, 아니다 싶은 것들도 그래도 내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좀 더 둥글게 둥글게 껴안고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교사가 아이에게, 학부모가 담임에게, 담임이 학부모에게 그 어떤 관계에도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말은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토대로 유홍준 교수가 구절을 좀 고쳐서, 문화유산을 보는 자세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학부모 상담 주간에는 특히 더욱 와 닿는 문구이다. 

평소에 쉽게 드러내지 않는 속마음을 누군가와 주고받을 때 우리는 환하게 웃거나 눈물을 흘린다. 일종의 공명(共鳴)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상담을 계기로 아이에 대해 속 깊은 공감의 대화를 나누고 나면 다음 날 같은 아이가 또 다른 깊이로 보인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한 해 교실살이의 따뜻한 원동력이 된다.

학기 초 아동기초 조사서에 어느 한 학부모님이 적은 한 문장 덕분에 일 년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제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기입란의 담임에게 바라는 점에 쓰여진 저 따스한 한 문장 덕에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무턱대고 믿어주고, 일단 감사해주고, 우선 좋다 해주는 그 감사한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이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오늘은 내가 손을 내밀어볼까 한다. 

인자하고 고운 사랑이 드리워진 따뜻한 손내밂. 그렇게 관계의 문을 활짝 열어보려 한다. 나의 작은 손내밂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적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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