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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어쩌자고

윤후명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에
너를 잊어버려야 하리 오늘도
칠흑 같은 밤이 되면
사라진 길을 길삼아
너 돌아오는 발자욱 소리의
모습 한결 낭랑하고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 숨막
혀를 깨물며 나는 자지러지지
산 자 필(必)히 죽고
만난 자 정(定)히 헤어지는데
어쩌자고 어쩌자고 너는
어쩌자고 어쩌자고
온몸에 그리운 뱀비늘로 돋아
발자욱 소리의 모습
내 목을 죄느냐
소리죽여 와서 내 목을 꽈악
죄느냐, 이 몹쓸 그립은 것아,

△윤후명 : 강원 강릉 출생. 1967년 '경향신문' 시, 1979년 '한국일보' 소설 당선. 시 전집 '새는 산과 바다를 이끌고' 등. 소설집 '윤후명 소설 전집'(12권)이 있음. '녹원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수상. 연세대, 국민대 대학원, 체코 브르노 콘서바토리 교수 역임.


며칠 후면 딸아이의 혼사가 치러진다. 그런 탓인지 더더욱 분주하고 경황이 없는 나날이다. 큰일을 치르기까지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아 더 바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인연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보니 이 일 또한 물 흐르듯이 지나갈 일 아닌가. 그 덕에 삼십오 여 년 전에 치렀던 나의 혼사를 돌이켜 보게 됐고 따지자면 몸만 쏙 빠져나간 듯한 느낌뿐이다.


수일 전 어릴 적 많이 불렀던 오빠생각(1925년·최순애 시·박태준 작곡)의 사연을 알게 됐다.
그 시절의 순애보가 새삼스럽게 다가온 사연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어린이 잡지 '어린이: 소파 방정환 출간'에는 열두 살 소녀 '최순애'의 동시가 실렸다. 서울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 '오빠생각'이 입선한 것이다. 그리고 수원에 살고 있던 최순애가 지은 시 오빠생각은 멀리 경상남도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년 '이원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최순애가 1925년 잡지 어린이에서 입상한 후, 1926년에는 이원수가 '고향의 봄'으로 입상했다. 얼마 후 '홍난파'가 고향의 봄을 노래로 만들었고, 오빠생각은 5년 후에 박태준이 작곡을 하게 되면서 노래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원수와 최순애는 러브스토리에 성공해 십년 만에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사연이야 널리 알려진 일이기도 하지만 사연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의 태동이 詩였으니 어이 멀리하랴.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이와 견주어 소설가로 더 알려진 윤후명 시인의 작품 '어쩌자고 어쩌자고'가 가지는 맛은 어떻게 다가올까. 이승하 시인은 이 작품을 연애시의 최고 절창이라고 했는데 저 속에도 순애보의 사연은 숨어 있겠지.
철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혼을 했고 철이 없다는 딸아이가 결혼을 하는데 돌이켜 보면 나도 나름대로의 연애방정식을 적용해 몇 가지 사연은 있지만 저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됐을까? 자못 궁금하지만 궁금증은 먼 후일에 캐보기로 하고 두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뿐이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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