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나라에서 쓸 말을 키우던 목장
조선시대 나라에서 쓸 말을 키우던 목장
  • 강현주
  • 승인 2019.05.16 23:00
  • 기사입력 2019.05.16 20:52
  • 댓글 0
  • 온라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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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목마성 전경.
남목마성 전경

마성(馬城)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막아 쌓은 담장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주로 해안가와 섬 등을 중심으로 200여개의 목장을 설치했다.

#360필 먹이던 남목마성
울산지역의 목장은 조선전기에 방어진목장(구목장), 방암산 목장, 이길곶 목장 등 모두 3개의 목장이 설치됐으나, 방암산 목장과 이길곶 목장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바로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 있는 목장은 중앙의 사복시 소속의 목장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년)에 의하면 '방어진에 목장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키운 말이 360필, 그 둘레가 47리'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1471년)에 실려 있는 '염포지도(鹽浦之圖)'에는 염포와 양정의 경계선을 따라 심천곡을 거쳐 성골에서 강동동의 경계에까지 마성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성지(鶴城誌)'(1749년)에는 1651년에 새로운 마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남목마성에서 '順治八年(1651) 辛卯二月日 周回三百七十七步築'이란 명문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돼 이 성이 1651년 쌓은 신 마성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신마성의 규모는 '목장지도(1663)'에 동서 10리. 남북 15리, '학성지(1749)'에 3,626보(步), '울산부읍지(1832)'에 1,930보, '울산목장목지(1871)'에 1,913파(把) 등으로 기록돼 있다.


#염포 중리에서 미포까지 5.1㎞
현재의 남목마성은 염포동 중리와 성내 경계지점에서부터 남목으로 넘어오는 도로 남쪽 산기슭을 지나 동쪽으로 미포에까지 5.1㎞에 이르고 있다. 남목마성의 도면상 전체 길이는 약 5.11㎞ 정도에 달한다. 성벽은 내벽과 외벽으로 된 협축(夾築)이 기본이며 너비 1.8~2곒, 높이 1.5~2곒정도 남아있다. 신마성과 관련한 기록 중 1651년 칠읍갱축(七邑更築) 이라 하여 마성을 쌓을 때에 울산, 문경, 청도, 밀양, 영천, 경주의 주민들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에서 언양, 청도, 흥해 등의 지명이 새겨진 성 돌이 발견돼 구간을 나눠 축성했음을 알 수 있다.
남목마성은 1897년(고종 34)에 폐지됐다. 지역의 원래 명칭은 '남목(南木)'이었으나, 목장이 설치됐기 때문에 '남목(南牧)'으로 바뀌게 됐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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