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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대한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한다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공식 응원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후렴구 한 구절은 박자에 맞춰 흥얼거릴 만도 하다. 모기윤 작사 김희조 작곡의 이 노래는 1980년대까지 국가대표 경기마다 시작을 알리는 응원가였다.

이 노래의 시작과 함께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이 하나씩 크로즈업되고 태극기와 함께 승리를 다짐하는 결의가 자막으로 흘렀다. 스포츠에 지나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심는다며 그때의 결기는 흘러간 옛노래가 됐지만 50대 이상의 세대들에겐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일요일 새벽, 우리의 자랑스런 대한건아들이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에서 열린 U-20 월드컵 8강전에서 세네갈과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승리, 4강에 진출했다. 박종환 감독과 김종부 선수가 만든 1983년 멕시코 신화 이후 36년 만의 4강 진출이다. 극적이었다. 선취골을 내주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경기는 대한민국의 새벽을 깨웠고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연장 전반 조영욱의 역전 골이 터지자 잠을 설친 축구팬들의 함성이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를 들썩이게 했다. 국민 통합의 카타르시스였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느끼는 통합의 정서는 서로가 하나라는 무의식적 연대감에서 비롯된다. 이해관계가 없는 순결한 애국심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흥분의 시간은 잠시, 뉴스가 시작되면 한순간 우리는 분열과 갈등의 민낯과 대면하고 만다. 이번에는 현충일 추념사 때문이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해 논란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념사의 핵심 메시지는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는 것"이라며 "그런 취지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시정부도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만들어졌고, 백범 김구 선생께서도 임정에서 모두 함께 하는 대동단결을 주창했고, 거기에 김원봉 선생이 호응했다"며 "문 대통령이 독립 과정에 있었던 김원봉 선생의 역할을 통합의 사례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원봉 논란은 더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자유한국당은 김원봉을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놓고 "우리 사회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반발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추념사가 결국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는 시도로 읽고 있는 모양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 문제를 대통령의 이분법적 공세로 단언한다.

나 원내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 "문 대통령이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정치권과 국민에게 누구 편이냐고 다그치고 있다"며 "결국 내 편, 네 편을 갈라치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촛불혁명', 3·1절 경축사에서 '빨갱이', 5·18 기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 등의 발언을 했다며 "우리 정치를 계속 싸움판으로 만들기 위해 도저히 보수우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발언으로 야당의 분노와 비난을 유도하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3·1절부터 임시정부와 4·19, 광주와 촛불까지 소환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한민국 100년의 스토리텔링은 누가 뭐라 해도 진보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패의 상징 같은 사대부와 탐관, 그리고 고루하기 짝이 없는 양반의 기득권이 무너지고 핍박받던 민중들이 봉기하면서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는 역사인식이다. 맞는 말이다. 한치도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구들장 아랫목만 집착한 양반 사회는 변화의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

결국 매일 새로운 기운을 호흡하며 일신우일신을 걸개로 걸고 탐욕과 부패를 잘라낸 민중들은 만세운동의 주역으로, 임정의 심장으로 자라 독립된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다는 한편의 서사다. 여기에 첨부파일처럼 연결하는 김원봉식의 양념들이 매번 보수 우파 진영의 흥분지수를 끌어올려 급기야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금도를 넘은 발언까지 터지고 말았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이야기다.

"내만 그랬나 뭐"라고 외치며 여권도 야당시절 대통령을 향해 쥐00, 그X 따위의 막말을 퍼붓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아니올시다다. 그때 그랬으니 지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정당하다는 논리는 오류다. 원인제공을 한 쪽이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애처로운 변명에 불과하다.

바로 말이 가진 마술 때문이다. 말은 뱉고 나면 스스로와 무관하게 온갖 둔갑술로 진화한다. 특히 저렴한 표현이나 민감한 어휘일수록 둔갑술의 급수는 순식간에 오르기 마련이다. 사불급설이다. 특이하게도 그 둔갑의 기술은 오래전 유행했던 말보다 지금 현재의 말이 더욱 큰 힘을 갖는 속성이 있어 지나간 이야기는 현재진행형과 동급의 문법으로 작동되지 않는 법이다. 

통합보다는 분열, 타협보다는 갈등을 부추긴다는 청와대발 문장들이 핀잔을 듣는 와중에도 자유한국당 쪽의 막말 논란이 더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일 뻘겋게 달아오른 입 때문에 곤혹스러운 자유한국당 쪽이 급해졌다. 지도부는 "내년 총선의 승리를 가로막는 막말을 하는 것에 대해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공천에서의 감점, 경우에 따라 공천 부적격자로 만들려는 공천룰을 가다듬고 있다"며 "한국당의 지지를 깎아 먹고 국민에 걱정 끼치는 사태에 대해 말 조심해야 한다는 걱정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황교안 대표도 이 문제에 가세했다. 그는 "지금 우리 당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면이 많다"며 일부 인사들의 자충수가 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런데도 한국당의 막말 퍼레이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막말'에 이어 '빨갱이' 발언으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차명진 전 의원에 이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입까지 틀어막고 있다"며 지도부의 입단속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문수의 논리는 구태의연하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은 입이 무기, 여당은 돈이 무기"라면서 "여당 대표는 하지 말아야 할 불법 선거운동도 거침없이 총력 질주하고 있는데, 야당 대표는 풀어야 할 입까지 틀어막고 있으니 선거 결과가 걱정된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육부 장관과 여성가족부 장관 등을 잇달아 만나는 일 자체를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규정하며 "황 대표는 입단속보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불법 선거운동을 고발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내에서 막말을 두고 이런 식의 감싸기가 이어지는 상황이 바로 자유한국당의 현주소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달창'을 시작으로 잊을 만 하면 터지는 막말 릴레이는 이제 더 이상 이상한 뉴스도 아니다. 정용기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이 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민경욱 대변인은 헝가리 참사에 "골든타임은 3분"으로 비아냥거렸다. 여기에 한선교 사무총장은 기자들을 보고 "아주 걸레질을 한다"며 배설 수준의 막말을 쏟아냈다. 또 언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흥미진진해 지기까지 하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분노조절 장애의 일부 야당 인사들이 여권의 자충수를 도우는 X맨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금 보수 우파 정당이라는 대한민국 야당은 길을 잃고 있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이 땅에서 보수라는 이름으로 집권한 이들은 한결같이 수구골통의 가면을 애국심으로 포장했다. 정체성이 없는 분칠한 수구세력은 끊임없이 진화한 진보에 밀려 안방으로,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가능한 의식주는 편안한 아랫목을 찾아 삼삼오오 행렬을 이룬 보수는 아랫목에 앉아 허구헌날 변명과 남 탓에 몰두한 채 동굴 밖에서 벌인 스스로의 추태를 반성하지 않았다.

이따위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보수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다. 세상과 마주하고 변화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다. 이런 식의 막말 정당이라면 차라리 소멸해야 한다. 분노조절 장애와 비아냥으로 물개박수를 치는 일부 국민들과 마스터베이션을 기도하는 꼴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겠지만 역시 나가 되는 것은 바로 그 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죽어야 산다는 말의 뜻도 못 읽는 자들의 행태가 씁쓸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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