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忙(바쁠 망)은 心(마음)과 亡(죽음)을 합친 형태로 '마음을 죽인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바쁘다.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소비한다. 부모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고군분투 중이고, 전업주부들 또한 바쁘다. 모두의 일상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바쁘게 사는 게 능사는 아닌데 우리는 이렇게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가득 안고 마음을 죽이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1년에 크게 2번의 방학을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방학인 듯 방학 아닌 방학이다. 방학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모두 '쉼(,)'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방학은 '학생의 건전한 발달을 위한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서 실시하는 장기간의 휴가'라고 한다. 

휴가, 휴식을 말할 때 休(휴)는 쉼표(,)이다. 오선지에 악보를 보면 쉼표가 있다. 노래를 부를 때 숨을 고르는 곳이다. 이 쉼표가 없다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쉼은 휴식(REST)의 뜻과 함께 잠시 멈춘다(PAUSE)는 뜻도 포함한다. 쉼은 평온한 안식의 의미와 더불어 잠시 멈춘 뒤 다시 이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아이들은 바쁘게 달려온 일상 속에 소중한 선물 같은 쉼표의 시간을 원한다. 심심함을 허용하는 멈춤도 필요하다. 만족할만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도 쉼표를 찍어주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쉼이 없이 달려야 하는 우리 아이들. 유니세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 1위, OECD 주요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꼴찌이다. 

뇌의 전두엽, 해마 등으로 구성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기이해, 자서전적 기억,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과정, 창의성을 지원한다. 이 디폴트모드네트워크는 편안하게 쉬고 있을 때만 활동한다고 한다.(앤드류 스마트의 '뇌의 배신')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31조에서는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방학은 마음의 쉼표를 찍는 기간이고, 마음껏 뛰어노는 기간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방학다운 방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 현실이다.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부모의 휴가도 오롯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직장에 나가는 부모가 방학 때 아이들 맡길 곳이 없어 줄줄이 학원에만 보내는 일이 없도록 지역 사회에서 운영하는 학교 담장 밖의 적절한 대안 돌봄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부모와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온 사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얼마 전 '선생님들이 미치기 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들이 미치기 전에 개학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6월이 지나면 학교 업무, 학생과의 실랑이, 학부모 민원에 지쳐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교사들이 늘어간다. 아이들의 엇박자와 불협화음은 최고조에 이른다. 스포츠 경기의 작전 타임처럼 이 흐름을 단절시키는 것이 절실할 때가 방학 직전이다.

현장의 수많은 사건 사고와 업무로 과부하가 걸려 지친 선생님들에게도 방학이 방학다웠으면 좋겠다. 밀린 숙제 같은 각종 연수와 재택업무처리, 방학 중 근무, 각종 캠프 운영에 방학이 다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방전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채워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스스로 돌아보고 추스를 수 있는 작은 쉼표 찍어, 우리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오늘은 빼곡하게 채워 넣었던 내 아이의 방학 스케쥴도 비워보려 한다. 아이 손으로 직접 방학 때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해보아야겠다. 무엇을 꼭 해야 하는 방학이 아니라 무언가는 하지 않아도 될 방학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숨 고르기가 필요한 아이에게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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