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길목
오후의 길목
  • 울산신문
  • 2019.07.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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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화 수필가

제법 떨어진 곳에서부터 민망한 듯한 웃음을 띠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 어쩌다 들르지만 스스로 우리 가게의 주요 단골로 생각하는 고객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된 듯 평소의 당당하던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궁색한 이야기를 하자니 자꾸만 말이 늘어지고 본론이 겉돌아 애가 타는 듯하다. 

적절한 순간에 말꼬리를 잡아주었다. 반색을 하며 돈 오천 원을 빌려달란다. 꼭 갚아주겠다며 차비를 잊고 나왔다고 했지만 속사정은 안과 치료비로 짐작이 되었다. 그녀는 당뇨합병증으로 안과 치료를 받는 중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S안과의 소문을 듣고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싶은데 치료비가 많이 든다는 부담감을 드러낸 일도 있다. 

병든 몸으로 딸과 함께 생활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하루하루가 형벌이라며 자신의 노년이 자식의 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 딸과 오늘 아침에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불편한 상황을 피해 나왔지만 밖에서의 처지는 더 딱해진 듯한 눈치다.

나는 순간 묘한 심리 상태가 됐다. 상가가 즐비하지만 아쉬운 일이 있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우리 가게 앞에 와서 멈추는 일이 잦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내가 물러터진 것을 눈치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결론은 '그래, 아쉬워하는 사람을 외면하면서 어딘가에 기부하면 그건 생색이지'라는 것이었다. 잠깐이지만 '또 나야'라는 생각을 한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쪽으로 오실 일이 있으면 주세요" 하며 오천 원을 주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오던 길로 돌아갔다.

살다 보면 종종 궁할 때도 있다. 그녀가 왔을 때 천 원권 몇 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겁이 났다. 혹시 빌려달라는 금액이 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차에 '오천 원만…' 하는 말이 반갑고 고맙기까지 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수중에 몇천 원밖에 없어 전전긍긍하는 일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래처에 현금으로 결제한 직후에는 크지 않는 금액이라 해도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특히 오늘 그분의 경우처럼 소액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한다면 빌려주고 싶지 않아 핑계라고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몇천 원밖에 없는 얇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온통 자잘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들썽한 그녀에게 따뜻한 차 한 잔도 대접하지 못한 채 보내고 만 것이다. 

오늘 아침 그 댁의 모녀 사이에 있었을 상황을 떠올려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혼기를 넘긴 딸에게 얹혀사는 심정은 타인이 헤아리기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갈수록 시력이 떨어져 사물이 흐리게 보이니 딸에게 족쇄가 될까 봐 두렵다는 그녀의 말은 절박하게 다가왔다. 

"본래 부모는 자식이 화살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활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잡고 있으니…" 말끝에 막막함이 묻어 있다. 그녀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늙어가는 과정에 맞을 시간들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곤궁하고 건강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 지는 노년의 삶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을 가혹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의지대로 영위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만 건강마저 잃는다는 것은 노년에 꿀 수 있는 꿈이 사라지는 일이다.

사람은 노년에도 꿈을 가진다. 그것은 많은 생명체 중에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권한이다. 자식이 장성해서 독립하고 나면 부모도 진정한 독립을 하는 것이다. 노년에 꿈을 꾸고 실현하는 것은 이즘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꿈을 꾸며 모처럼 가슴에 파문을 경험하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은 미래 삶의 무늬를 그리는 것이 꿈이 아닌가. 노년의 꿈은 책임과 의무로부터 한결 자유롭다.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라 해도 그 성취감은 젊은 날과는 맛이 다르다. 

언젠가 시장 노점에서 조갯살을 발라 파는 노인이 꿈을 말했다. 그녀는 매일 조금씩 모이는 돈으로 손자가 고등학교 갈 때 컴퓨터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했다. 손자는 대학까지 갔고 노인은 나를 만날 때마다 자랑이 대단했다. 그녀는 손자를 통해 꿈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컴퓨터 안에 있다. 손자가 그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은 어쩌면 노인이 신천지에 진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근사한 노년의 꿈이 실현되는 기쁨일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다. 소박한 취미 생활로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일일 수도 있다. 평소엔 짬을 낼 수 없어 소원하게 지내던 지인이나 이웃을 식사에 초대해 따뜻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 것도 노년의 아름다운 꿈일 수 있다. 일전에 만난 그녀도 어쩌면 손주의 손을 잡고 해질녘 강변을 한가롭게 산책하는 것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노후의 당연한 일상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소소한 일이 바로 노년의 꿈이 될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일 것 같지만 쉬운 일이 아닌 듯도 하다. 며칠 뒤 그녀는 이른 아침에 오천 원을 들고 찾아왔다. 따뜻한 오가피차를 대접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웃었는데 그 웃음은 바람 한 줄기에도 날아갈 듯 연약한 느낌을 주었다. 

"아주머니, 자주 웃으면 웃음에도 근육이 생긴다고 하네요" 

순간적으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과 상관없이 위로가 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뱉은 것 같다. 말을 해놓고 보니 자주 써도 좋을 듯했다. 그녀는 또 웃었다. 
 
"웃음에도 근육이 있나 보군" 
"아주머니, 따님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삶은 늘 우리의 생각 너머에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던가요?"
"망가져 가는 건강 때문에 딸까지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까 자꾸만 화가 나요. 그래서 눈치가 보이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하게 되고요"

우리 모두 경험할 수도 있는 노년의 문제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나 역시 그 길에 들어서고 있다. 

인생의 오후는 유난히 짧아서 하지 못한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폭우 속의 산골짜기 물처럼 불어나는 것 같다. 거기에다 건강이 어깃장을 놓을 때는 당혹스럽다. 바람과는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에 그리 주눅들 일만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봐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평생의 지혜를 모은다면 인생의 오후도 감사와 감동을 경험하며 나름 유쾌한 시간도 만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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