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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炎天)이다. 선인들은 하늘을 9개의 방위로 나눠 불렀다. 중앙은 균천(均天), 동쪽은 창천(蒼天), 북동쪽은 변천(變天), 북쪽은 현천(玄天), 북서쪽은 유천(幽天), 서쪽은 호천(昊天), 남서쪽은 주천(朱天), 남쪽은 염천(炎天), 남동쪽은 양천(陽天)이다. 양기가 가장 집약된 남쪽 하늘이 염천이다. 그래서 여름날 햇살이 열기를 더하면 우리는 염천더위라 이름지었다. 뜨거운 기운이 비처럼 쏟아지는 형국이다. 그래도 올해는 실속없는 긴 장마 덕분에 폭염지수가 줄었다. 염천 하늘에 검버섯 불쑥불쑥했던 지난주말, 다시 반구대를 찾았다. 아랫도리가 잠긴 반구대암각화는 민망했다.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어서면서 반구대암각화가 잠기기 시작했다. 지난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 2018년 10월 6일 태풍 콩레이 이후 다시 잠겼다. 울산시와 수자원공사는 암각화를 물에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 평소 사연댐 수위를 52m로 유지하고 있지만 태풍 등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 속수무책이다.

반구대암각화의 아랫도리가 물에 잠기자 여론이 들끓었다. 울산의 정치권이 목젖을 세웠다. 사연댐에 당장 수문을 설치하라는 외침이다.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여성·청년위 등 상설위원회 위원장과 문화예술·관광특위 등 특별위원회 위원장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이 자리에서 울산시당 상설·특위 위원장들은 "지난 19일 시의회 시민홀에서 사연댐 수문 설치에 관한 시민토론회가 열렸는데, 다음날 토론회 열기가 식기도 전에 태풍 '다나스'가 몰고 온 폭우로 반구대 암각화는 또 물속에 잠겼다"고 침통해 했다. 위원장단은 지난 20년 가까이 거론된 차수벽 설치를 비롯해 터널형 물길 변경, 생태제방 설치, 가변형 임시 물막이 등을 거론하며 "실효성이나 현실성 문제로 용역비와 세월만 흘러 보내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결의를 보였다.

반구대암각화를 처음 세상에 알린 한 교수는 "반구대암각화의 훼손은 울산시와 시민, 문화재청의 책임이 엄중하다"며 수문설치에 힘을 보탰다. 울산시 자문기구와 울산시의회도 가세했다. 울산시 미래비전위원회와 의원연구단체는 토론회를 갖고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사연댐 수문 설치를 밀어붙였다. 이 토론회에서 한 전문가는 "암각화 문제가 국가 주요 갈등 과제이기 때문에 국무총리실에서 울산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하며, 아직도 오도된 '맑은 물'에 대한 허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사연댐 수위 조정 이후 울산의 식수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한번이라도 있었느냐"며 잘못된 정보로 울산시의 낙동강 물 공급 대책과 식수 확보 문제를 폄하했다.

모두가 열정적인 관심이다. 반구대암각화 문제가 이처럼 시민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된적이 있는지 싶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다. 암각화를 물 밖으로 꺼내 자맥질의 고통을 없애야 한다는 전지적 참견시점은 옳다. 이런 참견이 10년전에 있었다면 지금쯤 반구대암각화는 당당하게 세계유산으로 전 세계인의 볼거리가 돼 있을 법하다. 하지만 10여년 전 반구대암각화의 심각한 훼손 문제가  제기됐을 때 울산의 여론은 냉랭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009년 3월로 돌아가 보자. 2006년 지역언론의 보도로 훼손이 확인된 반구대암각화는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보존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1년여간의 조사결과 반구대암각화는 퇴적암의 강도를 나타내는 5등급 가운데 4.5등급에 해당하는 붕괴 위험상태였다. 사람으로 치면 사망직전이었다. 울산시는 암각화 일대의 암석 상태와 표면 강화 처리 가능 여부에 대한 대책에 착수했다. 반구대암각화의 훼손과 풍화 정도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만큼 '보존강화처리'가 시급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암석상태를 조사한 전문가는 "수위를 낮추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퇴적암인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할 수 없다"고 청진기를 들이댔다. 그는 보존대책으로 "차수공법을 이용해 하부에서부터 물길이 닿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반구대암각화는 물론 천전리 각석의 위험상태도 언론에 지적이 됐다. 훼손의 정도는 물속에 자맥질하던 반구대암각화보다 물밖에 나와 있는 천전리각석이 더 심했다. 거친 환경에 노출돼 표면 박리 현상이 가속화 되는 상태였다. 관리주체인 문화재청은 국보급 문화유산을 지자체에 관리를 위임해 놓은 상태였다.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야단법석이었지만 대책은 전무였다. 2006년 이전까지 무수한 탁본 허가를 내줬고 외국의 대학과 서울대 등에서는 슈미트 해머라는 무시무시한 도구까지 이용해 수백군데를 타격하는 일까지 눈감아 준 문화재청이었다. 한마디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 전까지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오래된 돌덩이와 그 표면에 새겨진 신기한 옛사람의 흔적 이상도 이하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자들이 문화재 행정의 전권을 쥐고 갑질을 했던 세월이었다.  

그런 세월이 지난 뒤, 암각화 훼손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문화재청은 얼굴색을 바꿨다.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암각화 수호천사를 자청했다. 그리곤 돌연, 울산시와 울산시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예 삿대질까지 할 기세였다. 바로 물 문제가 근거였다. 울산시는 시민의 식수와 맑은물 보장을 근거로 대안찾기에 나섰지만 문화재청은 물은 부족하지 않다며 사연댐의 물을 빼고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라고 주장했다. 생태제방을 만들자, 수위조절을 하자, 카이네틱인가 뭔가하는 이상한 벽을 쌓자까지 오만가지 안이 반구대암각화를 들었다 놨다했다.

그리고 속절없이 세월만 흘렀다. 이번엔 사연댐에 구멍을 내서 수로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대세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공법상 문제가 있다면 댐 측면에 새로운 여수로를 만들어 물을 빼는 작업을 하는 공사도 대안이 될 법하다. 하지만 모든 전제조건은 무조건 낙동강 물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비용은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하고 낙동강 물의 안전성과 수질은 수자원공사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전제가 깔리더라도 또 하나의 관문이 있다. 바로 수질이 나쁠 수도 있는 낙동강 물을 기꺼이 먹겠다는 울산시민들의 합의다. 

여기서 물 문제를 검토해 보자. 울산시가 낙동강물을 계속 끌어쓴다면 한해 2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확보해야 한다. 하루 12만 톤에 달하는 물 부족이 예상되는 경우다. 더 큰 문제는 기후 변화로 인한 낙동강의 수질악화 때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더 이상 청정수를 공급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진다는 문제도 있다. 요즘같은 기후조건이라면 당장 내년부터 울산은 하루 12만 톤의 청정수원 부족현상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식수 소요량은 4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식수원인 회야댐과 사연댐에서 확보할 수 있는 양은 각각 12만 톤과 15만 톤이 전부다.

울산은 최근 5년 간 일일 평균 33.7톤의 청청수를 사용해 왔다. 부족한 물은 낙동강에서 공급 받았다. 현재의 3배에 육박하는 부족한 물 12만 톤을 낙동강물로 충당하게 되면 원수대금만 연간 97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원수대금은 톤당 223원이다. 여기다 톤당 170원씩 들어가는 물이용부담금까지 더하면 물을 끌어오는 비용만 107억 원에 달한다. 물이용부담금은 톤당 170원이다. 이뿐 아니다. 정부비용까지 더하면 자체원수만을 공급할 때보다 총 181억 원이 더 들어간다. 낙동강물은 수질이 나빠 고도정수처리가 요구되는데 일반공정 112.56원 보다 21.53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이 수치는 몇년전의 계산법이어서 지금은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일반정수공정이나 인력운용비용 등까지 따지면 부담은 더욱 커진다.

가뜩이나 수질이 떨어지는 낙동강물은 최근 이상기후에 의한 원수부족 및 상류의 수질 악화로 원수공급이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 지난 10년간 낙동강 수질오염사고는 100여 건에 달한다. 그래도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고 울산시민들이 나쁜 수질을 수용할 정도로 준비가 됐다면 사연댐에 수문 아니라 댐 자체를 부숴버려도 가능한 일이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나 감성적인 호소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렇게 반구대암각화에 관심을 가졌길래 흥분지수를 높이는지 딱해 보여서 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차분히 의견을 하나로 모아 현실적인 대안에 집중할 때다. 문제는 본질이지 껍데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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